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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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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밖으로 나온 일기들 일기는 극히 사적인 기록이다. 그러나 더러 세상 밖으로 나와 명성을 얻고, 고전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생생한 사실과 깊은 내면이 동시에 담겨서일 터이다. 국내외를 아울러 세권을 꼽는다면, (시대순)가 어떨까. 이순신 장군의 는 대한민국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하다. 음력 1592년 정월 초하루부터 1598년 11월17일까지의 기록으로, 마지막 일기는 장군이 전사하기 이틀 전에 쓰였다. 그날그날 전황 같은 건조한 사실만 기록돼 있는 건 아니다. 자신의 건강 상태,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 사적인 내용도 적지 않다. 영역본 제목은 ‘War Diary of Admiral Yi Sun-sin’이다. 는 독일 출신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1942년 6월12일~1944년 8월1일 나치의 감시를 피해..
표창장이 필요한 사람들 ‘조국 정국’을 대분류하면 절반은 ‘표창장 정국’이다. 논문 교신저자나 연구소 인턴 문제는 그 하위범주로 분류하면 된다. 핵심은 ‘조작’ 여부다. 대한민국 정치권과 검찰, 언론은 물론 온 국민까지 사생결단으로 이 문제에 매달려왔지만, 그 와중에 난 한갓지게 ‘표창장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고맙게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조국 장관 낙마 표창장’으로 고민을 덜어줬다. 표창장이란 본디 부조리거나, 역설이거나, 한바탕 소극이었다. 표창장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때가 더러 있다. 4대강 사업 유공자로 표창장을 받은 이는 1152명이다. 수자원공사, 국토부, 환경부, 국방부 등에서 녹봉을 먹는 이가 가장 많다. 강을 파헤치고 막으면 물이 맑아진다고 했던 학자들이 뒤를 잇는다. 영주댐 사업을 담합해 처벌받은..
조국 촛불, 그 말줄임표와 물음표 개인 용무로는 갈 일이 없는 서울 서초동을 지난 토요일 오후에 찾아갔다. 계절이 바뀌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조국 정국에 대해 희미한 실마리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집회 참가자 수가 실마리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거대한 인파는 그날 집회의 가장 명백한 특징이었다. 지금도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들끼리 ‘페르미 기법’을 들먹이며 만 단위와 백만 단위 사이에서 날 선 숫자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 그 규모가 저마다의 예상을 크게 넘어선 사실은 어느 쪽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집회 풍경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에서 2016~2017년 박근혜 하야 집회로 이어져온 그것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동원된 집회에서는 듣기 어려운 현장 구석구석의 ‘지방방송’도, 인파가 쉼 없이 밀고 써는 주변부의 ..
조국은 이럴 줄 몰랐을까 며칠 전 큰딸이 지나가듯 말했다. “아빠보다 딸이 너무 안됐어. 나라면 못 견뎠을 거야.” 같은 20대 여성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 타고난 품성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그녀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과 학벌을 겨룰 위치에 있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녀는 전문대에서 미용을 전공하고 극한노동의 3년 인턴 생활을 거쳐 지금은 주6일을 야근하는 미용 노동자다. 애초 ‘분노’나 ‘허탈’ 같은 감정의 자장 안에도 들지 못해 저러는가 싶어 나대로 가슴 한구석이 먹먹했다. 수도권 대학에 다니는 작은딸은 이 사태에 아예 시큰둥하다. ‘정치 냉담자’라 하기에는 십대 때부터 이런저런 집회를 열심히 쫓아다니던 모습과 전혀 딴판이다. 궁금했으나 묻지는 못한 채, 그저 그녀 주변의 공전 궤도를 따라 하릴없이 돌기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