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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올바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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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 남성들의 처참한 실패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남성들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이 쓴 이 문장에서는 숨이 막힐 듯한 밀도가 느껴진다. 성폭력 피해자로서, 또 수많은 피해자와 연대한 주체로서, 고통의 시간을 졸이고 졸여 응축한 질문이어서일 거라 겨우 짐작한다. 나아가, ‘그럴듯함’의 미망을 내려치는 저 망치 같은 질문을 받는 남성 처지에서는 자신 또한 ‘처참한 실패’의 가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직감하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 의원이 말한 ‘그럴듯함’을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으로 고쳐 써본다. 미국에서 이 표현이 등장한 때는 18세기 말이지만, ‘차별 반대’의 뜻으로 쓴 건 197..
기안84가 뜻 없이 남긴 질문 얼마 전 ‘기안84’라는 웹툰 작가의 이 농인(청각장애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문제가 된 그림에는 한 농인의 말풍선들이 떠 있다. 하나는 발화고 다른 몇개는 독백이다. 그 농인은 수어가 아닌 독순법(입술 움직이는 모양을 보고 상대방 말을 알아내는 방법)과 음성언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말풍선 안에 표기된 대사는 발화와 독백 둘 다 청인(비청각장애인)의 말소리와 ‘차이’가 있다. 그것이 장애인 비하라고 비판받자, 기안84는 모든 표기를 청인의 말소리로 대체했다. 기안84의 작품 세계를 아는 이들은 그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비하한 경우가 처음이 아니라고 했다. 블로그 같은 데에는 몇몇 사례도 제시됐다. 가만 보니 주로 맥락적인 문제였다. 그렇다면 농인의 발화와 독백을 청인의 말소리로 바꿔 표기했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