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쟁

(3)
전쟁 같은 일상, 어디라도 이태원이다 지난달 30일 아침, 버스를 갈아타려고 서울 연세대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여느 일요일 출근길이면 차 한대 볼 수 없던 연세로를 버스들이 태연히 오가고 있었다. 서대문구가 얼마 전에 ‘주말 차 없는 거리’를 폐지했고, 평일엔 버스만 지나갈 수 있는 ‘대중교통전용지구’마저 해제하려고 한다는 기사를 읽기는 했었다. 한적함이 좋아 500m를 부러 걸어서 지나곤 하던 거리가 차량과 경적 소리만 빼곡했던 오래전으로 되돌아가 있는 풍경이 떠올랐다. 간밤 이태원 참사에 개기일식처럼 검게 먹어버린 심장 한가운데로 저릿한 파동이 훑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태원 참사와 그보다 한없이 사소해 보이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퇴행 사이에도 별자리처럼 이어지는 지점이 있다. 무엇보다, 그날 이태원로의 차량 통행을 막았더라면 골목길..
전쟁의 알레고리 한국판 12월호 ‘12월의 르 디플로 읽기’로 쓴 글입니다. 이따금 이렇게 잡문을 써서 블로그에 재활용합니다. 연평도에 떨어진 포탄 수십 발은 한반도가 전쟁을 잠시, 그러니까 60년 가까이 쉬고 있는 상태(휴전)임을 새삼 환기한다. 또 실제 전쟁이 나면 어떤 스펙터클과 내러티브가 우리 앞에 펼쳐질지 매우 실감나게, 그러나 포탄 조각처럼 파편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는지를, 바닷가에서 굴을 따다가, 혹은 거실에서 스포츠 중계방송을 보다가 전쟁을 맞을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한국군 수뇌부가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 그들도 전쟁의 비등점을 실제보다 꽤 높게 보고 있었던 것같다.) 이처럼 포탄의 메시지는 극히 사실적인데, 정작 한국의 호전주의자들은 몽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말의 전..
군복 애착증을 위한 변명 그들의 군복 입은 모습에서는 백전노병의 이미지가 좀체 떠오르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야 하는 자리에서는 어김없이 군복을 입었을 테지만, 그들의 입성은 그들이 기대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뜻대로 대변하지 못한다. 그들은 ‘애국자’의 기호를 기획했다. 그러나 그들의 군복 애호는 차라리 코스프레(만화나 게임의 주인공으로 분장하는 취미)나 복장도착(이성의 옷을 입는 데서 성적 만족이나 흥분을 얻는 성향) 같은 특이한 취미와 성향으로 읽히고 있다. 군복 주름에 날을 세워 입고, 그들은 미성숙한 어르신의 극치를 보여준다. 군인의 삼엄한 이미지는 실종되고 날건달의 이미지만 남는다. 하지만 ‘예비군복만 입혀놓으면 개가 된다’는 말은 이 경우엔 온전히 들어맞지 않는다. 의미로는 되레 정반대다. 대개 예비군복은 ‘일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