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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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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승맞은 미학은 쓸모도 많지 영화 (2021)를 볼 때마다 나는 특정 장면에서 속절없이 눈물을 비치고 만다. 농인 부모한테서 태어난 청인 루비 로시(에밀리아 존스)가 오디션에서 노래를 부른다. 처음엔 음성언어로 시작하지만, 손가락이 미세하게 달싹이더니 이내 새가 날개를 펴 창공을 날듯 수어로 ‘일인 이중창’을 하는 시퀀스다. 루비가 제 손동작을 애틋한 눈빛으로 좇을 때면 나도 모르게 그 눈길에 이끌리다 금세 수어의 선율에 몸을 맡기게 된다. 루비의 수어는 음성의 번역본이 아닐뿐더러 애초 둘은 하나였던 듯 숨 막히는 앙상블을 이루고, 그 미학적 전율은 수어 한마디 못 하는 내 몸속으로 오롯이 흘러든다. 지난달 연극 (서울시극단)을 보러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 갔다. 출연진은 전문 연기자들만이 아니었다. 중증 발달장애인들과 조력자들도 제..
불가능을 요구하는 ‘휠체어 오큐파이’ 설 연휴의 여유를 누리려는 마음들이 부산해지기 시작하던 지난 10일 오후 3시 무렵, 서울 지하철 4호선에서 사달이 났다. 종점인 당고개역을 출발해 35분이면 서울역에 도착해야 할 열차의 운행 시간이 2시간30분으로 탄성 잃은 고무줄처럼 늘어졌다. 장애인권단체 활동가 100여명이 역마다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보행장애인이 다수였고, 휠체어가 장사진을 이뤘다. 지하철의 ‘정상’ 운행은 ‘불가능’했다. 주류 언론은 다들 무관심했다. 사람이 개를 무는 ‘비정상’보다 사소해 보여서였을 수 있다. 그러나 승객들 처지에서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었고, 더러는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귀성열차를 놓쳤을 터다. 솔직히 내가 그 처지였다면 휠체어 행렬 앞에서 장애 없는 두 다리를 동동거리며 장애인을 비하하는 육두문자를 속으로 삼..
죽게 내버려두는 ‘생명권력’ 미셸 푸코는 감옥, 군대, 병원, 학교를 근대의 상징 공간으로 봤다. 감옥은 이들 공간의 특징이 응축된 정점이다. 중세의 형벌이 주로 공개 처형 같은 신체형이었다면 근대의 형벌은 형기를 채우게 하는 구속형이다. ‘교도소’라는 이름에도 나타나듯, 구속형의 명분과 목적은 규율의 내면화에 있다. 감옥, 군대, 병원, 학교는 하나같이 규율을 가르쳐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드는 곳이다. 그런데 병원이 유독 튄다.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나라도 튼튼’이라는 소년체전 구호를 보자. 개인의 건강한 신체는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사회의 것이기도 하다. 근대 ‘규율권력’에 ‘신체건강’과 ‘품행방정’은 실과 바늘 같은 노동자 규범이며, 의료 행위는 그런 노동자를 공급하기 위한 조처의 일부다. 그럼에도 끝내 규범에..
‘마로니에 8인’의 노숙 혹은 역습 1960년 작 (원제 ‘매그니피센트 7’)은 서부영화 올드팬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하다.(2016년 리메이크됐다.) 하지만 이른바 ‘장판’(장애인운동계)에서만큼은 ‘마로니에 8인’의 유명세에 미치지 못한다. 마로니에 8인은 실존인물들이다. 이들의 투쟁을 담은 (2010)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다.(총격 장면은 없다.) 2009년 6월4일 장애인 8명이 경기도 김포의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이라는 집단수용시설을 떠나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다. 석암은 한해 전 수용자 20여명과 직원 10여명, 시민사회의 연대투쟁 끝에 재단 책임자들이 비리로 형사처벌 받은 터였다. 그러니 이들 8인은 일껏 시설을 민주화해놓고 노숙인의 삶을 자처한 셈이다. 결심하는 데는 짧으면 30초, 길어야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