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태원

(2)
청승맞은 미학은 쓸모도 많지 영화 (2021)를 볼 때마다 나는 특정 장면에서 속절없이 눈물을 비치고 만다. 농인 부모한테서 태어난 청인 루비 로시(에밀리아 존스)가 오디션에서 노래를 부른다. 처음엔 음성언어로 시작하지만, 손가락이 미세하게 달싹이더니 이내 새가 날개를 펴 창공을 날듯 수어로 ‘일인 이중창’을 하는 시퀀스다. 루비가 제 손동작을 애틋한 눈빛으로 좇을 때면 나도 모르게 그 눈길에 이끌리다 금세 수어의 선율에 몸을 맡기게 된다. 루비의 수어는 음성의 번역본이 아닐뿐더러 애초 둘은 하나였던 듯 숨 막히는 앙상블을 이루고, 그 미학적 전율은 수어 한마디 못 하는 내 몸속으로 오롯이 흘러든다. 지난달 연극 (서울시극단)을 보러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 갔다. 출연진은 전문 연기자들만이 아니었다. 중증 발달장애인들과 조력자들도 제..
전쟁 같은 일상, 어디라도 이태원이다 지난달 30일 아침, 버스를 갈아타려고 서울 연세대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여느 일요일 출근길이면 차 한대 볼 수 없던 연세로를 버스들이 태연히 오가고 있었다. 서대문구가 얼마 전에 ‘주말 차 없는 거리’를 폐지했고, 평일엔 버스만 지나갈 수 있는 ‘대중교통전용지구’마저 해제하려고 한다는 기사를 읽기는 했었다. 한적함이 좋아 500m를 부러 걸어서 지나곤 하던 거리가 차량과 경적 소리만 빼곡했던 오래전으로 되돌아가 있는 풍경이 떠올랐다. 간밤 이태원 참사에 개기일식처럼 검게 먹어버린 심장 한가운데로 저릿한 파동이 훑고 지나가는 게 느껴졌다. 이태원 참사와 그보다 한없이 사소해 보이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퇴행 사이에도 별자리처럼 이어지는 지점이 있다. 무엇보다, 그날 이태원로의 차량 통행을 막았더라면 골목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