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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히 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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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계적인, 너무나 위계적인 기후위기 이번 수도권 물난리가 기후위기와 관련 있는지는 아직 축적된 데이터가 적어 판단할 수 없다고 어느 전문가가 언론에다 말했다. 기후위기는 축적된 데이터를 교란하는 양극적이고 돌발적이며, 따라서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없게 된 사태다. 쓸모없어진 데이터가 계속해서 쌓여야 언젠가 쓸모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은 기후위기 여부를 영원히 판단하지 않겠다는 재귀적인 자기암시로 들린다. 울리히 벡이 말한 ‘위험사회’도 통계적으로 위험이 예측 불가능해진 사회라는 점에서 기후위기의 20세기적 언명과 같다. 다만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는 그의 명제는 적어도 기후위기 앞에서는 참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지독히 위계적이고 계급적이다. 발달장애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감정노동하는 면세점 사업장 노조 간부와 열..
위험으로 평등해진 사회 ‘위험사회’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1944~2015)이 정립한 개념이다. 산업화를 거친 현대의 특징을 ‘위험’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인데, 작명이 썩 탁월해 보이지는 않는다. 현대가 위험사회면 현대 이전은 안전사회였나? 현대가 그 전 시대보다 확률이나 강도 면에서 더 위험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에 의해 위험해진 사회’ ‘전지구적으로 위험한 사회’ ‘빈부 가리지 않고 위험한 사회’ ‘위험을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사회’로 변했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은 작명도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현대 사회의 위험의 형질이 어떻게 변했는지, 핵을 들어 짚어보자. 체르노빌 핵발전소 참사는 자연이 아닌 인간(의 과학기술)에 의해 일어났다. 발전소 인근인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넘어 모든 유럽 국가..
신종플루보다 무서운 것들 위험사회에서 위험을 인지 못하거나 과잉반응 하거나 독일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의 특성을 ‘위험사회’라는 개념으로 포착해냈다. 지금이 옛날보다 훨씬 위험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적어도 현대 도시에서 길을 걷다 들짐승에게 잡아먹힐 위험은 사라졌다. 위험사회론은 위험을 통계적으로 예측·관리하고, 사후적으로 보상할 수 있다는 근대적 ‘믿음’이 더는 성립하기 어렵다는 통찰적 인식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폭발 사고는 20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까지 피해의 범위와 규모조차 확정할 수 없다. 체르노빌 사고에 대비한 보험 상품을 내놓은 보험사가 있었다면 오래 전에 망했을 것이다. 오늘날 역학(疫學)적 현상도 위험사회론의 그물 안에 있다. 본디 전염병은 색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이 퍼지는 병이지만, 가장 빠르고 광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