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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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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 저널리즘’ 얕보는 ‘기자 저널리즘’께 그 차별과 배제의 인식론이 갈수록 초라해지는 현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기자 저널리즘’과 ‘피디 저널리즘’이라는 개념 구분이 있다. 구분이란 비교를 거쳐 그 차이점을 도출한 뒤 카테고리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어야 할텐데, 나는 그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 기자가 하면 기자 저널리즘이고 피디가 하면 피디 저널리즘이라는 정도라면 굳이 구분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짐작가는 대목이 없진 않다. 이런 구분은 기자 저널리즘은 ‘기록’을, 피디 저널리즘은 ‘연출’을 중시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경향적으로 그럴 수는 있겠다. 신문 기사나 방송 리포트는 분량이 짧다보니 사실관계만 압축해 전하는 기법이 발달했다. 이에 견줘 방송 시사 프로..
‘드래곤 타투 저널리스트’ 출현하다 언론노조 집회현장에서 아우팅한 어느 용(龍) 문신 기자 한국사회에서 ‘문신’(tattoo)은 오랫동안 조폭의 상징이었다. 덕분에 문신의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신 문신을 하면 국가가 군대를 면제해줬다. 특혜를 준 것이라기보다는 국민으로서 정상성을 박탈한 것이다. 쉽게 말해 군대조차 갈 수 없는 막장 인생 취급을 당했다. 문신이 표현의 자유와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 같은 인권 인지적 범주 안으로 들어온 건 불과 최근의 일이다. 어떤 문신남이 ‘군대 가게 해달라’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지배적 편견이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들의 요즘 문신 유행은 참으로 상전벽해다. 문신은 더는 차별의 대상이 아니다. ‘간지’나는 영구화장이다. 그렇다고 터부..
‘난쏘공’, 그 운명적 스테디셀러 세입자를 끝없이 희생시키는 언론의 기우뚱한 객관식 문제 용산참사가 터진 지 한 달이 넘도록 책임 공방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철거민 세입자들의 방화냐, 경찰특공대의 진압작전이냐가 쟁점이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같은 차원에 놓고 선택을 요구할 수 있는 물음의 구조가 아니었다. 설령 철거민 세입자들이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났다고 해도 경찰의 무리한 강경진압과 인명구조 외면의 책임이 사라지기는커녕 줄어들지도 않는다. 언론은 흔히 선택형 물음을 통해 의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물음의 구조가 잘못된 경우가 적지 않고, 그런 물음일수록 주관적 의도가 내포돼 있기 십상이다. ‘박대박’ 코너를 떠올려 보라. “무분별한 성형과 장기 매매를 일삼는 이 인어,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1번을, 아니다, 지금은 칠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