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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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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을 두고 한동안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피의사실을 육하원칙에 따라 삼엄하게 기술해야 하는 문서의 성격과 위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보다 검찰이 잘 알았을 테고, 그런데도 굳이 그걸 사용한 의도쯤은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어와 영어의 혼종으로 그럴듯한 사자성어 꼴을 갖춘 이 신조어의 거침없는 번식력에 정작 눈길을 빼앗겨, 이러다가는 머잖아 헌법 조문에도 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열없는 상상까지 하고 말았다. ‘내로남불’은 1996년 당시 신한국당 의원이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처음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본인 주장이지만, 사실이라면 일단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성싶다. 일회성 유행을 넘어 언..
언론은 클리셰를 즐긴다 ‘전쟁과 골프’의 진부한 반복, 그리고 기자들의 깊숙한 개입 시사주간지 기자는 마감에 임박해 터지는 대형 사건에 취약하다. 일껏 다 만들어놓은 표지이야기가 쓸모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돈 받은 사실을 시인한 직후다. 닷새 뒤쯤 배포될 글인데, 이럴 땐 무엇보다 글감 잡는 게 가장 힘들다. 노 대통령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실은 없지만, 그때 가면 이미 상황이 많이 바뀌어 있을 테니 말이다. 시사 현안을 다루는 글쓰기는 이처럼 ‘시의성’이라는 결정적 변수와 씨름한다. 하지만 시의성이 아무리 중요해도, 언론이 새로운 사건을 모두 낯설게 대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건들을 유형화하고, 정해진 틀에 맞춰 재구성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노 전 대통령이 돈 받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