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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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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재림한 ‘소요죄’가 말하는 것 1919년 3·1운동이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나 후작 이완용은 조선총독부 기관지 에 세 차례에 걸쳐 ‘경고문’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실었다. 글 안에는 모두 5차례 ‘소요’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경고는 조선 민중을 향한 것이고, 소요는 그들의 만세운동을 가리킨다.2015년 11월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체포됐다. 경찰은 ‘소요죄’ 혐의까지 얹어서 그를 검찰에 송치했고, 경찰청장 강신명은 다른 가담자 여럿도 체포해서 똑같은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두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그 다음에는 희극으로.” 카를 마르크스가 1장에 남긴 저 유명한 명제(원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은 아니다)를 거의 100년의 시차가 있..
어느 날, 홀연히 봉하마을에 다녀오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 기고]인간과 정치를 분리하는 담론의 외설성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는 이 글을 청탁받는 것과 함께 ‘생활의 발견’ 풍으로 내게 찾아왔다. 잊고 지내던 이의 부음이 들려오면 봉투에 담을 돈의 크기를 찰나 가늠하는 풍경처럼 말이다. ‘생활의 발견’에 빗대면, 연인에게 이별을 선언하다 말고 삼겹살집 주인에게 생고기인지 냉동고기인지 따져 묻는 것처럼. 아니 그 반대로, 고기의 냉동 여부를 천진하게 묻다가 별안간 정색하고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활의 발견’은 내게 꽤나 어려운 텍스트다. 웃음은 괄약근이 풀리듯 터져 나오지만, 가슴 속에는 자잘한 이슬이 맺히게 한다. 웃음과 울음이 상극인지, 서로 다르기는커녕 분리조차 할 수 없는 것인지, 그 순간 판단이 서지 ..
부마항쟁을 잊고 박정희를 숭배하다 ※ 이 글은 한국판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무관심 속 30주년 기념 심포지엄… 오늘의 한국 사회에 시사점 양자는 모순대당 관계…‘힘의 욕망’ 벗어나야 박정희 극복 가능 부마민주항쟁은 사람 몸의 꼬리뼈와 같다. 퇴화기관이라는 말이다. 지난 10월 16일은 부마항쟁이 일어난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었다. 온갖 상수학적 마케팅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부마항쟁 30주년에 관한 사회적 환기는 묵상에 가까웠다. 1979년 부마항쟁이 일어나고 열흘 뒤 10·26 사태가 터졌다. 박정희는 부마항쟁을 총칼로 진압하고 일주일도 채 안 돼 자신의 심복 김재규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30년이 지난 지금, 부마항쟁은 흔적만 남은 꼬리뼈처럼 잊혀지고, 박정희는 숭배의 대상으로 되살아나 있다. 그리고 박정희의 부활을 이해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