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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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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을 쓰지 말아야 할 이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내로남불’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을 두고 한동안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 피의사실을 육하원칙에 따라 삼엄하게 기술해야 하는 문서의 성격과 위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건 누구보다 검찰이 잘 알았을 테고, 그런데도 굳이 그걸 사용한 의도쯤은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어와 영어의 혼종으로 그럴듯한 사자성어 꼴을 갖춘 이 신조어의 거침없는 번식력에 정작 눈길을 빼앗겨, 이러다가는 머잖아 헌법 조문에도 들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열없는 상상까지 하고 말았다. ‘내로남불’은 1996년 당시 신한국당 의원이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처음 사용했다는 설이 있다. 본인 주장이지만, 사실이라면 일단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성싶다. 일회성 유행을 넘어 언..
설계를 설계하라 ‘설계’는 대장동 사태의 열쇳말이다. 검찰 수사의 길잡이별이 ‘설계’임은 물론이다. 누가, 왜 수익 배분을 그렇게 설계했는지 사법적으로 특정하는 것이 검찰이 가려는 최종 목적지일 것이다. 인물로 치환하면 화천대유 3인방을 비롯한 토건-법조 카르텔을 경유한 뒤에야 나올 ‘윗선’일 것이다.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물을 필요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예단을 가진 수사라고 단정하면 그 또한 섣부른 예단이다. 수사의 범주를 제한하다간 외려 성역 논란을 부를 수도 있다. 예단을 가진 수사와 성역 없는 수사는 기실 한끗 차이다. 문제는 의도성을 가진 수사인지 여부다. 그러할지 우려하는 시선과 그러하길 기대하는 시선 모두 탄탄한 경험칙에 근거하고 있다. 검찰은 그 우려와 기대 사이의 협곡을 통과해야 한다. 스스로 지은 업보..
‘상위 12%’의 눈에 비친 ‘대장동 사태’ 추석 연휴 때 일이다. 한달에 두어번 불가피한 용무에 쓰는 16년 된 소형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호대기에 걸렸는데, 매캐하게 타는 냄새가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조수석 뒷바퀴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차를 길가로 빼려고 사방을 둘러봤다. 검게 선팅된 독일산 고급차들이 에워싼 한가운데 우리 차가 투명한 탁상용 어항처럼 오도카니 놓여 있었다. 초보운전인 둘째 딸은 운전대 앞에서 놀란 금붕어마냥 얼어붙었다. 아비는 어떻게든 용기를 주고 싶었다. “쫄지 마! 우리 차는 상위 12%야!” 나는, 정확히 말해 ‘우리 가구’는 정부가 공인한 대한민국 상위 12%다. 25년 된 20평대 초반 아파트에 사는데, 윤희숙 전 의원과 다른 ‘순수 임차인’이다. 전세 대출금은 5년 만에 끝이 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