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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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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어느 대선 이야기 20대 대선 결과가 나온 지도 2주가 지났다. 여느 때처럼 승패의 결과를 토대로 과정을 복기하는 백가쟁명이 만개했다. 세대와 젠더는 누구나 언급한다. 진영과 이념도 못지않다. 거대 양당의 패권주의와 이를 재생산하는 87년 체제는 진보 논객이면 빠뜨리는 법이 없다. 미-중 갈등이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국제 정세의 영향이 언급되는가 하면, ‘탈진실 시대’라는 글로벌한 현상이 후경에 배치되기도 한다. ‘거봐라’ 식의 사후예언적 냉소와 ‘민심은 천심’이라는 게으른 인식론, ‘졌지만 잘 싸웠다’는 정신승리법도 적지 않지만, 듣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하는 탁월한 분석이 넘쳐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쓸모’는 별개의 문제다. 대통령실 이전을 둘러싼 사상 유례없는 ‘당선자 폭주’ 사태가 공론장을 블랙홀..
‘이대남’의 약발도 소멸한다 20대 대통령 선거는 이미 만신창이다. 15일 개시된 공식 선거운동은 오랜 정치적 내전 상태에서 뒤늦게 나온 선전포고처럼 뜬금없어 보이고, ‘공약으로 승부하라’는 지당한 주문은 작렬하는 포탄 앞에서 평화선언을 주창하는 것만큼이나 초현실적으로 들린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20대 대선이 역대 최악의 적대적 선거로 흐르고 있다는 데 이론을 찾기 어렵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귀엣말의 외설로 기억되던 1992년 대선마저 어느덧 ‘인지상정’의 미담 설화로 느껴질 지경이 되었다. 알다시피 이번 대선의 적대성을 상징하는 대표 집단은 ‘이대남’(20대 남성)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단문 메시지에 열광적으로 반응하면서 대선 판세를 일거에 흔들어놓은 장본인들로 지목된다. 전체 유권자의 6.7%에..
오늘의 적, 내일의 적 대통령 선거 얘기를 하지 않는 게 하는 것보다 어려운 시절이 돌아왔다. 자신이 찍은 후보가 당선되는 걸 본 적이 없는 이라면 성가시거나 소외된 시간으로 들어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냉소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육박해오는 시간일 수 있다. 후보와 그 진영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 선거에 졌다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후보는 여태 한 명도 없었다. 다들 국민의 현명한 선택 앞에 고개 숙이고, 서둘러 앞날을 다짐했을 뿐이다. 2012년 12월19일, 대선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노동자 세 명이 목숨을 끊었다. 모두 장기 투쟁 사업장 소속이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게 아니라 천 길 벼랑 끝이 발밑에서 무너진 ‘추락사’였다. 애초 그들 앞에 놓인 ‘죽느냐 죽..
풍자냐 자살이냐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대통령 선거에서 1인칭이 구호로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싶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발표 직후부터 본질과 상관없는 저작권 시비에 휩싸인 것이야말로 이 구호가 경쟁자들을 얼마나 긴장시키는지를 시사한다. 몇몇 정치인들의 저작권 시비에 비해 트위터 타임라인에 등장한 풍자는 쓰든 달든 쾌미를 주지만, 그렇다고 파괴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풍자는 상대에 대한 힘의 열위(劣位)를 드러내야 하는 표현 양식이다. 그 약자가 자신을 꼿꼿하면서도 허허롭게 타자화할 때 풍자는 일어서지만, 힘에 있어서 상대를 압도할 수는 없는 것이 또한 풍자의 숙명이기도 하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구호와 이에 대한 풍자는 보통의 그것들보다 훨씬 복잡한 관계를 구성한다. 문제의 구호는..
프랑스 대선을 보는 정신승리법 ‘올해는 선거의 해’라는 말은 한국 언론에게는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한 해에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는 것도 20년만의 일이니 지나친 호들갑이라고만은 할 수 없으나, 한국 언론은 딱 거기까지다. 올 한 해 국제 정세의 향방을 가를 외국의 굵직한 정치 이벤트가 한둘이 아니다. 최근만 해도 중국의 차기 권력이 시진핑으로 정해졌고,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한 박자 쉬고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 사건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문·방송을 통해 알기는 쉽지 않다. 미국 대선 공화당 예비선거에는 오히려 과한 관심을 보이지만, 결코 경마중계식 보도를 넘어서는 법이 없다. 지난 22일, 프랑스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5월 6일 결선 투표가 치러진..
파시즘의 망령이 배회한다 [안영춘의 미디어너머] OBS 경인TV 기자 2007년 12월 17일 (월) 07:11:00 히틀러의 콧수염, 나치 문양, 스킨헤드족…. 파시즘 하면 떠오르는 아이콘들이다. 하나같이 민주주의의 억압과 파괴를 환유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파시즘이 정작 민주주의라는 통과의례를 거쳐 등장하는 맥락까지 잡아내지는 못한다. 히틀러는 박정희, 전두환과 과(科)가 다르다. 제3제국은 총구 끝이 아닌 국민의 투표용지 위에 세워졌다.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대통령 선거를 눈앞에 두고, 나는 지금 파시즘이라는 이름의 망령이 한국사회를 배회하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다. 대선 결과보다는 대선 이후가 벌써 두렵고, 대선 과정은 이미 불길했다. 20세기 초반 독일의 ‘풍경’과 지금 한국의 모..
‘행복한 눈물’과 ‘욕쟁이 할머니’ 사이 [안영춘의 미디어너머] OBS 경인TV 기자 2007년 12월 03일 (월) 07:30:08 난 리히텐슈타인의 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기시감(데자뷰)이 드는 건 그나마 신문이나 잡지 속 사진으로 그 그림을 몇 번 스쳐봐서일 것이다. 아니면 그 화가가 예술적 모티프로 삼았다는 ‘진짜’ 만화의 잔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렁그렁 눈물 맺힌 그림 속 여성은 어려서 봤던 만화영화 속 원더우먼을 빼닮았다. 어쨌든 그림에다 작품이름, 화가이름까지 조합할 수 있게 됐으니, 평소 미술과 담쌓고 사는 나로선 누군가에게 깊이 감사할 일이다. 작품 한 점 값이 만화책으로 국립중앙도서관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임을 안 것이 더 큰 수확이기는 하지만. 얼마 전 시작된 어느 금융그룹의 TV 광고에는 “돈 버는 것이 최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