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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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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누구의 ‘자유’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자유’의 폭포 세례와도 같았다. 양과 질 모두 그랬다. 16분 남짓 동안 35번 입에 올렸고, 대한민국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구원할 독보적 가치로 추어올렸다. 그러나 그의 취임사는 일본 고유의 단시(短詩)인 ‘하이쿠’처럼 언어 밖으로 탈주하려는 텅 빈 기표 같기도 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과 ‘세계 시민 여러분’에게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정확하게 인식해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문할 뿐, 왜 자유가 양극화와 사회 갈등을 치유하고 도약과 빠른 성장을 가능케 하는 과학·기술·혁신과 필연적 관계인지 따위에는 지극히 말을 삼갔다. 친절한 설명이 있어도 채워 넣기 어려운 그 광막한 행간은 결국 그가 5번 호명한 ‘여러분’ 몫으로 할당됐다. 하지만 각자 흩어져 따로 노는 저 파편적 개념들 ..
오늘의 적, 내일의 적 대통령 선거 얘기를 하지 않는 게 하는 것보다 어려운 시절이 돌아왔다. 자신이 찍은 후보가 당선되는 걸 본 적이 없는 이라면 성가시거나 소외된 시간으로 들어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냉소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육박해오는 시간일 수 있다. 후보와 그 진영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 선거에 졌다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후보는 여태 한 명도 없었다. 다들 국민의 현명한 선택 앞에 고개 숙이고, 서둘러 앞날을 다짐했을 뿐이다. 2012년 12월19일, 대선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노동자 세 명이 목숨을 끊었다. 모두 장기 투쟁 사업장 소속이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게 아니라 천 길 벼랑 끝이 발밑에서 무너진 ‘추락사’였다. 애초 그들 앞에 놓인 ‘죽느냐 죽..
웃어야 산다 이 글은 2010년 송년호 ‘시론’으로 쓴 글입니다. 2010년을 보내고 2011년을 맞는 것과 관련해 글을, 그것도 ‘시론’이라는 문패로 써달라는 요청은 난감했다. 주례사의 심정도 이와 비슷하리라! 시인 김수영은 “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라고 읊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발발한 지 석 달 뒤였다. 누구보다 4·19 혁명을 예찬했던 김수영에게 5·16은 믿기 어려운 참극이었음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대략 10년 뒤, 시인 김지하는 이 시구를 빗대어 “누이야 풍자냐 자살이냐”라고 썼다. 박정희의 폭압 정치가 극을 향해 내달릴 때였다. 두 시인 모두에게 ‘풍자’는 현실의 고통을 승화하는 기제였다. 풍자는 ‘비유’라는 표현 양식을 통해 ‘웃음’이라는 사회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비유하는..
어느날 태성 골뱅이를 들어서며 9월30일 언론연대 후원의 밤에서 축시를 낭송했다. 축시는 다시 하지 않겠다던 지난해 2월 형진과 완이의 결혼식에서의 다짐은 무너졌다. 기분 좋은 자기배반이다. 너무 바빠 시상도 떠올리지 못하다가, 급한 김에 김수영 시인의 를 오마주했다. 어느날 태성 골뱅이를 들어서며 - 시인 김수영의 작풍으로 안영춘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마천루에서 찍어대는 찌라시 대신에 찌라시의 요설 대신에 600원짜리 한겨레가 전단지 하나 없이 문앞에 널브러져 있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한겨레 능곡지국 나무늘보 같은 지국장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죽임 당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위해서 이명박 물러가라고 관제언론 처단하라고 서울광장에서 배내밀어 외치지 못하고 만오천원 받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