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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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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적 ‘오염 엘리트’에게 탄소세를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이끄는 ‘세계불평등연구소’에서 얼마 전 ‘기후불평등보고서 2023’을 발표했다. 유엔의 지원까지 받은 방대한 연구 결과물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보고서의 절반은 수식(數式)이다. 연구자들이 망연한 수의 바다를 건너가 확인한 중대한 사실은, 전세계 ‘탄소 불평등’에서 국가 내의 탄소 불평등이 차지하는 비율(64%)이 국가 간의 탄소 불평등보다 2배 가까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개최된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의 주요 의제가 기후위기로 인한 개발도상국의 피해 보상 문제였던 것만 봐도, 이번 보고서가 기존 인식을 뒤집는 것임을 금세 알 수 있다. 피케티가 에서 방대한 통계를 분석해 경제학의 많은 정설을 부정했듯이. 실제로 2019년과 1990년의..
우물과 도넛이 풍요롭게 하리라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우물을 파서 누구나 물을 길을 수 있게 됐다. 우물은 마을에 더욱 큰 부를 안겨다 줄, 말 그대로 ‘원천’인 셈이다. 그러나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한 건 아니다. 사기업이 우물을 파서 주민들에게 물을 판다. 국내총생산은 증가하지만, 마을의 부는 그대로다. 주민들은 물값 부담만 새로 지게 된다. 생태정치학 창시자인 앙드레 고르가 예시한 국내총생산의 ‘마술’이다.() 국내총생산은 경제의 절대적 지표 같지만, 경제학 역사에선 신인 축에 든다. 미국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가 1934년 제안했다. 한 나라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부가가치를 화폐로 계산한 채권·채무 관계의 총액이다. 화폐 교환이 일어나지 않는 마을 공동체 우물이나 가사노동은 누락되지만, 전쟁 무기는 주요 항목이다...
청승맞은 미학은 쓸모도 많지 영화 (2021)를 볼 때마다 나는 특정 장면에서 속절없이 눈물을 비치고 만다. 농인 부모한테서 태어난 청인 루비 로시(에밀리아 존스)가 오디션에서 노래를 부른다. 처음엔 음성언어로 시작하지만, 손가락이 미세하게 달싹이더니 이내 새가 날개를 펴 창공을 날듯 수어로 ‘일인 이중창’을 하는 시퀀스다. 루비가 제 손동작을 애틋한 눈빛으로 좇을 때면 나도 모르게 그 눈길에 이끌리다 금세 수어의 선율에 몸을 맡기게 된다. 루비의 수어는 음성의 번역본이 아닐뿐더러 애초 둘은 하나였던 듯 숨 막히는 앙상블을 이루고, 그 미학적 전율은 수어 한마디 못 하는 내 몸속으로 오롯이 흘러든다. 지난달 연극 (서울시극단)을 보러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 갔다. 출연진은 전문 연기자들만이 아니었다. 중증 발달장애인들과 조력자들도 제..
위계적인, 너무나 위계적인 기후위기 이번 수도권 물난리가 기후위기와 관련 있는지는 아직 축적된 데이터가 적어 판단할 수 없다고 어느 전문가가 언론에다 말했다. 기후위기는 축적된 데이터를 교란하는 양극적이고 돌발적이며, 따라서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없게 된 사태다. 쓸모없어진 데이터가 계속해서 쌓여야 언젠가 쓸모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은 기후위기 여부를 영원히 판단하지 않겠다는 재귀적인 자기암시로 들린다. 울리히 벡이 말한 ‘위험사회’도 통계적으로 위험이 예측 불가능해진 사회라는 점에서 기후위기의 20세기적 언명과 같다. 다만 “빈곤은 위계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라는 그의 명제는 적어도 기후위기 앞에서는 참이 아니다. 기후위기는 지독히 위계적이고 계급적이다. 발달장애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감정노동하는 면세점 사업장 노조 간부와 열..
위험으로 평등해진 사회 ‘위험사회’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1944~2015)이 정립한 개념이다. 산업화를 거친 현대의 특징을 ‘위험’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인데, 작명이 썩 탁월해 보이지는 않는다. 현대가 위험사회면 현대 이전은 안전사회였나? 현대가 그 전 시대보다 확률이나 강도 면에서 더 위험해졌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에 의해 위험해진 사회’ ‘전지구적으로 위험한 사회’ ‘빈부 가리지 않고 위험한 사회’ ‘위험을 통계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사회’로 변했다는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은 작명도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현대 사회의 위험의 형질이 어떻게 변했는지, 핵을 들어 짚어보자. 체르노빌 핵발전소 참사는 자연이 아닌 인간(의 과학기술)에 의해 일어났다. 발전소 인근인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를 넘어 모든 유럽 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