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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자유에 침을 뱉어라 한 달 반 만에 새로 올린 글, 그마저 블로그를 위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2월호에 쓴 글입니다. 먼지를 툭툭 털며, 포스팅합니다. (1995)에서 윌리엄 월레스(멜 깁슨)의 마지막 대사 “프리덤”은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구성한다. 영국 왕의 압제에 맞서 싸우다 최후를 맞는 이의 미학적 비장함은 단연 압권이다. 그러나 맥락은 스타카토처럼 튄다. 13세기, 스코틀랜드 독립투쟁을 이끌던 이의 마지막 발화가 과연 ‘자유’였을까. 이를테면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투사가 비운의 죽음을 맞는 순간 했던 말은 ‘자유’가 아니라 ‘대한독립 만세’였을 것이다. 또, 백인들의 잔인한 도륙 앞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이 ‘자유’를 외쳤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설령 월레스가 ‘자유’라고 외쳤다 해도, 그것은 ‘프리덤’(불..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은 울리나 [안영춘의 미디어너머] OBS 경인TV 기자 2007년 10월 21일 (일) ‘자유’는 경합한다. 우리(특히 정치인들이나 경영자들)는 그 대상을 흔히 ‘평등’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자유는 정작 자유 자신과 경합한다. 내 자유와 타자의 자유가 만나는 곳에서 자유의 경계는 그어진다. 그 경계를 넘어설 때 내 자유는 타자에게 억압이 되기도 하고, 심지어 폭력이 되기도 한다. 때릴 자유, 스토킹할 자유, 약탈할 자유가 형용모순인 까닭은 자유의 이런 경합적 속성에서 비롯된다. 따지고 보면 평등-불평등이라는 것도 ‘축적의 자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경합의 양태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언론의 자유라고 다를 리 없다. 누구에겐 언론자유가 다른 누구에겐 언론탄압이 될 수도 있다. 해마다 ‘국경없는 기자회’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