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가폭력

(2)
우리가 이완용과 이별하는 법 이완용은 친러파였다. 1896년 아관파천의 핵심 주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그는 고종 부자가 러시아 공사관 깊숙이 몸을 옹그리고 있는 동안 친러 내각의 외무대신에 올랐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친러파였던 것은 아니다. 그전 한때는 친미파였고, 그보다 앞서 수구파이거나 개화파일 때도 있었다. 물론 그는 두말할 나위 없이 악랄한 친일파였고, 친일파로 산 시간이 가장 길었다. 그러나 ‘친일파’라는 단일 정체성으로만 파악하기에는 너무나도 변화무쌍한 팔색조의 생이었다. 이완용의 변신 논리는 한마디로 ‘힘’이었다. 그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도, 힘을 좇는 데서만은 경이로운 일관성을 보였다. 친일파로 변신한 것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직후였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그가 애오라지 사리사욕에만 눈이 멀어 힘..
KBS 앞 폭력과 학살의 기억 해질 무렵 들려온 소식 어제(6월23일) 해질 무렵 사무실에서 머리털 비틀어가며 글을 쓰고 있는데, 한 기자가 대뜸 이런 말을 하더군요. “다음 아고라에 방금 떴는데, KBS 앞에서 1인시위하는 여성이 집단폭행을 당해 병원에 실려 갔대요.” 가해자는 이른바 ‘보수단체’(단체 이름을 몰라 이번에도 하는 수 없이 이 제도권 표현을 쓰지만, 그럴 때마다 목에 탁탁 걸립니다) 회원들이라고 하더군요. 마침 ‘언론 자유와 집회 자유의 관계’에 대해 두 번째 글을 쓰고 있던 터여서인지 다른 때보다 훨씬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할일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저녁 반주로 소주 한 잔 걸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술은 마시는 순간 두뇌와 가슴 사이 연결통로를 확장시킨다는 게 제 오랜 음주 이력에서 나온 결론입니다. 덕분에 이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