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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한반도 공룡을 만나다

역사바로세우기, 내용보다 더 가당찮은 그 인적 결합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얼마 전 집에서 EBS 다큐멘터리 <한반도의 공룡>을 봤다. ‘50억 규모의 제작비와 1년여 제작기간’ ‘아시아 최초 공룡 다큐’ ‘화려하고 섬세한 순수 국내 CG기술’ ‘뉴질랜드 올로케이션’ 등의 화려한 수사로 단장한 바로 그 프로그램. 드물게도, 먹을 게 제법 많은, 소문난 잔치였다. 17인치 아날로그 TV로 보기에도 가히 스펙터클했다. 치밀한 고증과 함께 주인공 공룡의 로망 등 감정선까지 짚으려 한 제작진의 학술정신/작가정신도 그런대로 돋보였다. 하지만 내 감정몰입은 정확하게 그 지점에서 멈춰섰다.

문득 어느 선배가 떠올랐다. 10년 전쯤 일이었다. 과학 담당 기자였던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공룡 화석이 발견됐어. 야, 대한민국 정말 자랑스럽지 않냐!” 글쎄, 그게 왜 자랑스럽지? 수천만 년 전 중국대륙과 한반도, 일본열도가 한 덩어리였던 땅에서 거대 파충류들이 먹고 먹히며 살았던 사실이, 뒤늦게 우연한 길손으로 찾아들어온 인류, 그 가운데서도 정부수립 50년밖에 안 된 대한민국의 백성에게 애국심을 부추기는 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 EBS '한반도의 공룡' 주인공인 육식공룡 타르보사우루스 ‘점박이’

 
정부 수립 60돌이 낀 해가 다 지나가는 요즘, 뉴라이트의 로망이 담긴 ‘근현대사’가 그 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역사교과서를 당장 스펙터클 대로망 서사다큐로 ‘바로세우기’에는 제작여건의 한계가 컸던지 그들의 ‘영혼 없는’ 기술 스태프인 교육과학기술부를 통해 깐깐한 토씨 첨삭을 하는 수준에 만족하고 훗날을 기약해야 했지만, 거기서 멈출 뉴라이트라면 굳이 전조등(라이트)을 튜닝(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당장 대체 교과서를 제작할 수 없다면 교과서를 대체하면 될 일이다.

‘현대사 특강’은 그 로망에 다가가기 위한 노동집약적 날품팔이였다. 노동집약형 산업 다음은 자동화라는 역사발전 단계론을 몸소 재현하듯, 뉴라이트는 다시 그들의 영혼 없는 기술 스태프인 교과부를 부려 <기적의 역사>라는 현대사 영상물을 만들었다고 한다(<한겨레> 8일치 1면, 3면). 이미 지난 10~11월 두 달 동안 80여개 영상물과 책자를 전국 1만여 초·중·고에 배포해 공부시키도록 했다고 하니, 시기적으로는 현대사 특강보다 앞서지만, 순서야 뭐가 대수랴, 관건은 로망이다.

<기적의 역사>는 신과 인간 사이 혼외아가 영웅이 되기도 하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로망을 계승한 듯, 아버지도 여럿이다.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 박정희는 ‘근대화의 아버지’다. (전두환·노태우는 ‘아버지뻘’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3년장으로 치르던 봉건적 유교 로망을 본받아 박정희의 죽음은 3개의 영상물로 구성했다는데, “태산이 무너진 듯, 강물이 갈라진 듯 이 충격 이 비통 어디다 비길까” 등의 내용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본디 로망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삼각의 러브라인을 제가끔의 기억으로 선형화한 영화 <오! 수정>의 장면들을 떠올려 보라.) <기적의 역사>에서 ‘4·19혁명’은 ‘4·19데모’로 재구성됐다고 한다. 80년대 영상에서는 80년 광주항쟁과 87년 6월 항쟁이 아예 기억에서 사라졌고, 2000년대 영상은 6·15 남북정상회담을 기억에서 삭제하는 대신, 그 기억의 빈자리에 ‘청계천이 도심의 오아시스로 탈바꿈’하는 ‘토목의 녹색 로망’을 들어앉혔다고 한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가 극단으로 갈리며 요란한 잡음을 내고 있지만 (흥행성은 시사회 관객들이 집단수면을 취한 걸로 봐서 이미 ‘꽝’으로 검증된 거나 다름없다.) 정작 내 관심을 끄는 건 따로 있다. 한국 근현대사에 새로운(뉴) 해석의 빛(라이트)을 던지겠다는 창작집단의 인적 구성이 포스트모던하다 못해 참으로 정신분열적이라는 점이다. 내가 볼 때, 이들은 한국영화의 거장이라는 임권택 감독과 에로 비디오의 선구자 유호프로덕션이 만난 것보다 기이한 결합이다. (임권택 감독에겐 이런 비유가 참으로 면구스럽다.)

▲ 한겨레 8일치 3면 머릿기사

 
뉴라이트 교과서포럼의 대표적 논객인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어떤 이인가. 지난 2004년 MBC <백분토론>에 나와 일제강점기 군 위안부를 미군 기지촌 성판매 여성과 동일한 맥락에 놓고 발언했다가 여론의 호된 치도곤을 당했던 학자가 이영훈이다. 이 식민지 근대화론자는, 주장의 타당성을 논외로 하면, 적어도 일제강점기에 관해 일관된 자기주장을 펼쳐왔다. 그에게 민족/국가 담론은 허구다. (물론 그가 민족 모순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 모순을 인정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개발/발전’뿐이다.)

그런데 그와 함께 역사바로세우기 로망을 꿈꾸는 자들은 누구인가. 과거에 빈민사목을 했던 목사(김진홍)든 자식에게 대형교회를 물려주려고 하는 목사(김홍도)든, 오로지 국가와 체제의 안보만을 소리 높여 외치며, 국가와 체제보다 사람을 중요시하는 자들을 모조리 ‘사탄’으로 모는 이들이다. 독도 문제만 불거지면 일본대사관 앞에 가서 단지식도 하고, 닭의 멱도 따고, 돼지를 때려잡아 피도 뿌리는, 개구리복 입은 어제의 용사들은 그들의 가장 충직한 행동대원들이다. 겉으로 보기에 적어도 그들은 극우 민족주의자들이다.

정태헌 고려대 교수는 이들의 결합을 두고 “일제 지배하의 경제는 일본인과 일본 자본, 일본 제국주의가 주체가 된, 즉 한국인의 국가가 없는 식민지 자본주의였다…보편적 의미의 국가가 결코 아니었다…식민지 지배 상황을 근대문명으로 보는 역사인식에는 나라를 되찾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런 역사인식의 소유자들이 대한민국과 정통성을 거론하면서 ‘좌빨’ 선동을 하고 있다. 보수가 여기에 합세하는 기막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한겨레> 11월29일치 ‘시론’)

지독한 독신주의자가 연애를 뜨겁게 하다 보니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게 된 걸까. 그리고 그의 파트너는 ‘가족의 가치’ 운운하며 근엄한 표정 뒤에서 외도를 일삼는 가부장은 아닐까. 이거야 말로, 헤테로의 극한 아닌가. 어쨌든 그들의 만남은 운명적일지 몰라도, 그들의 그로테스크한 러브 스토리는 요즘 초·중·고생들이면 하품하다 졸고 마는 80년대 에로물 수준, 그 이하다. 이거야 원, 육식공룡 타르보사우루스 ‘점박이’(<한반도의 공룡> 주인공)가 애국가 4절까지 부른 다음 국민교육헌장 끝까지 외우는 꼴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