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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미세먼지와 바이러스

김경호 한겨레 선임기자 jijae@hani.co.kr

안경은 마스크 위쪽 틈새로 빠져나온 후텁지근한 입김을 뽀얗게 뒤집어썼으나, 그 너머로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이 올려다보인다. 1년 전 이맘때 ‘시계 제로’의 어둡고 탑탑했던 하늘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지난해 초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온갖 대책이 쏟아졌지만, 대책 목록 가운데 ‘바이러스’는 들어 있지 않았다. 어느 전문가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코로나19가 해낸 것인가. 그러나 지난해에도, 또 올해도 우리는 마스크를 얼굴 높이 올려 쓰고 있다.

 

올봄 저 파란 하늘이 일러주는 가장 명징한 메시지는 초미세먼지 사태가 ‘사람의 일’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일상과 사람 집단의 산업 활동이 달라지자 공기도 달라졌다. 중국으로부터의 영향 감소도 그곳 사람들의 일상과 산업 활동이 달라진 데에 깊이 닿아 있을 터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따지고 보면 사람의 일이라고 과학자들은 말한다. 인류의 환경 파괴와 이에 따른 기후변화로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들이 사람들 가까이 다가오면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파되는 기회가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초미세먼지도 코로나19도 사람의 일이라는 사실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품게 한다. 초자연적이거나 불가항력의 자연현상이 아니라 사람 하기에 달린 일이라면 적어도 희망이 봉쇄되지는 않은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에 비견되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에서 인류가 큰 교훈을 얻는다면, 머잖아 바이러스 창궐뿐 아니라 초미세먼지 문제까지 덤으로 해결될 거라는 희망을 품어봄 직하지 않은가.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제국들이 그 거대한 참극을 목도하고도 같은 세대 안에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더 큰 참극을 일으킨 20세기 역사에서 보듯이, 인류는 스스로 희망을 걷어차는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희망을 절망으로 돌려놓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이고도 오랜 습속인지 모른다. 후쿠시마 대참사를 겪고도 원전을 포기할 줄 모르는 일본은 현재를 넘어 미래로까지 대참사를 연장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제1·2차 세계대전과 다른 길을 갈까. 여기에서도 희망과 절망은 교차한다. 오늘날 인류와 지구별의 지배구조를 만든 글로벌 헤게모니(주도권)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희망의 징후로 읽힌다. 과거의 제국인 영국의 총리가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 미시적인 징후라면, 현재의 제국인 미국이 세계 최대의 확진자 수를 기록한 것은 좀 더 거시적인 징후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고, 국가를 차별하지 않았다. 나아가 패권 위에서 창작된 신화 체계를 흔들며, 기존 지배질서의 후진성을 거침없이 폭로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은 약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 법이다. 코로나19 사태를 “전쟁”이라 이르는 언설은 은유에 그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지만, 강자는 어쩌다 예외적으로 감염되고 약자는 말 그대로 ‘무차별적’으로 감염된다. 더구나 감염 이후 생과 사의 갈림은 전적으로 차별적이다. 미국이 최대 확진자의 나라가 된 것은 그만큼 양극화가 극심하고 소수만을 위한 특권 사회임을 방증한다. 산업 활동 위축에 따라 노동의 불안전성 순서대로 노동자가 잘려나가고 갑을병정의 역순으로 중소상공인부터 무너지는 일은 우리나라도 절대 덜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 또한 사람의 일이라면 희망과 절망을 판가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코로나19 이후는 이전과 전혀 다른 인류사가 될 거라는 전망보다 더 섣부른 건, 그 신세계가 천국인가 지옥인가 예단하는 것이다. 요즘 자주 언급되는 ‘뉴노멀’(새로운 기준)의 사례들도 지금 단계에서 선과 악의 가치는커녕 지속성조차 판단하기 어렵다. 설령 재택근무가 확산한다고 해서 노동자의 삶이 본질에서 달라질 리도 없지 않은가.

 

내게 지금 가장 확실한 것은 경기도민으로서 내 소득과 상관없이 얼마간 재난기본소득을 받게 될 거라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집세 거부운동’이 확산하고 있다는 사실 보도가 그 위에 보태진다. 먼지와 바이러스 둘 다 사람 하기에 매였다면, 나는 흩어져 있는 이런 사실들에 별자리를 그리듯, 절망보다는 ‘사람의 역능’이라는 상상력과 실천력에 희망의 한 표를 조심스럽게 던지고 싶다.

 

※ <한겨레> 2020년 4월3일치 '아침 햇발'로 쓴 글입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35423.html

 

[아침 햇발] 초미세먼지와 코로나 바이러스 / 안영춘

안경은 마스크 위쪽 틈새로 빠져나온 후텁지근한 입김을 뽀얗게 뒤집어썼으나, 그 너머로 거짓말처럼 파란 하늘이 올려다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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