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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내 친구의 사찰 피해를 바라보며

박용현은 내가 일하는 신문사의 동기이자 벗이다. 그는 얼마 전 폭로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불법 사찰 자료에 ‘<한겨레21> 편집장’이라는 직함과 함께 실명이 특정돼 등장했다. 보도가 나온 날 아침, 흡연 공간에서 그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그래, 사생활은 깨끗하냐?” 함께 웃긴 했지만, 뒤통수가 서늘해지면서, 어느새 머릿속은 이 정권 들어서 내가 노상방뇨를 몇 번이나 했는지 헤아리고 있었다.

언론들의 반응은 처음엔 뜨뜻미지근하다 이내 후끈해졌다. 특별세무조사를 받을 때(김대중 정권)나 기자실이 통폐합돼 합동 브리핑룸이 설치될 때(노무현 정권) “언론의 자유”를 외치며 조건반사적으로 떨쳐 일어섰던 그들이 이제 언론 자신과 관련한 사안에서도 신중해진 것일까. 지상파 3사와 조·중·동은 하루쯤 간을 보다, 노무현 정권 때 사찰 자료가 전체 자료의 80%라는 청와대의 반격이 나오자 비로소 대서특필에 나섰다.

사실 그들의 반응은 스테레오타입이다. 5년 전에 비슷한 일이 벌어졌으면 어떻게 보도했을지 묻는 일은 민망할 따름이다. 지난 정권의 자료가 이번 정권의 자료와는 성격이나 합법성 여부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재반론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 관계를 따지는 대신 그 실체적 진실을 ‘진흙탕 싸움’이라는 관전평 속으로 쓸어 담아 버린다. 시나브로 박근혜 새누리당 대표까지 사찰 피해자임을 자처하고 나섰으니, 가히 카오스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불법 사찰’은 ‘합법 사찰’이라는 상대개념을 전제로 성립한다. 불법과 합법은 입법의 범주에 의해 갈린다. 거칠게 정리하면, 경찰 검찰 국정원 등 법률이 정한 주체(물론 총리실은 아니다)가 (정권안보가 아닌) 국가안보와 관련한 사항에 대해, 그것도 법률이 정한 방식 안에서만 활동할 때 합법이다. 이 경우 ‘사찰’이라는 표현은 흔히 ‘정보 수집’이라는 표현으로 대체된다. 합법성 여부를 떠나 ‘사찰’이 갖는 어두운 성격 탓이다.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는 국정원의 비석 문구는 사찰 피해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한 직후 새겨졌다. 이 문구에서 측정되는 유일한 질량은 국정원의 존재론적 공간을 음지로 정위했다는 점이다. 사찰은 불가피한 면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음지적 속성은 필연적으로 인권침해적일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이것을 누구보다 잘 간파해 활용하고 있는 이들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불법 사찰을 감행하거나 그 불법성을 두남두는 축이다.

불법과 합법을 가르기에 앞서 합법 사찰의 범위를 최소화하고, 사회적으로 인권 인지성을 심화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를테면 노상방뇨를 하는 동안에도 불법 사찰을 추방하는 데는 학생인권조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