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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군국주의적 연예관

한국의 특정 연예기획사 소속으로, 주로 춤을 추고 돌아가며 노래를 섞는 무리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이틀 동안 떼공연을 할 때, 한국 대중문화계 장외 명사인 한 여배우는 부산 한진중공업 안의 무리 가운데 있었다. 몇몇 언론 보도에 따르면, 파리 공연은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팬들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이름하여 ‘K팝 인베이전(침공)’이었다(<조선일보> 13일치 2면 제목). 같은 날 이들 언론의 다른 보도를 보면, 부산 한진중공업에서는 문제의 여배우를 필두로 한국 경향 각지에서 온 ‘외부세력’이 난동을 부렸다. 제목은 이렇다. ‘국가보안시설인 방산업체에 노동단체 수백 명 난입’(같은 신문 12면).

프랑스에서 열린 공연에 대해 현지 지인들이 전하는 반응은 한국 언론 보도와 온도차가 컸다. 대다수는 공연이 열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알더라도 별 관심이 없었다. 물론 언론들의 표현대로, ‘문화 선진국’에서 그만한 성과라면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럽인들 눈에도 “아이돌에게 연습생 시절 성형수술이라는 극단적 수단까지 동원”하는 한국 연예자본의 관행과 그 아이돌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 행태는 확실히 낯설었나 보다(<르몽드> 11일치에 대한 <경향신문> 14일치 인용 보도). 말로는 ‘한류’라면서도 유럽 현지 예술가들이 대거 투입된 건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한진중공업이 방산업체라는 사실은 아무런 의미를 구성하지 못한다. 방산업체가 아니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하다못해 컴퓨터 게임업체에서도 병역특례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진중공업이 방산업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안보와 관련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면 게임업체 노동자들이 파업을 해도 국가안보상 심각한 사태라고 해야 옳다. 또한, 방산업체인 한진중공업 노동자 수백 명을 정리해고하고, 정리해고 다음날 그 노동자들 한 해 임금 총액의 몇 배나 되는 주주배당을 챙겨 노동자들을 분노케 한 뒤, 협상조차 거부하며 파업 사태를 방치하고 있는 사용자는 국가안보의 적인 셈이다.

대중문화의 국외 진출을 ‘침공’으로 보는 시선은 시민들의 자발적 연대를 ‘난입’으로 보는 시선과 상동적이다. 두 사건을 공격과 방어, 긍정과 부정의 시선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은 이들 언론이 지극히 군국주의적이면서 오로지 강자의 패권을 옹호하는 정동에 사로잡혀 있음을 뜻한다. 그 시선은 음모적이라기보다는 조건반사에 가깝다. 지금도 트위터에서는 문제의 여배우를 비롯한 ‘난동세력’이 170일 가까이 타워크레인 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 노동자를 뜨겁고 발랄하게 격려하고 있다. 유럽의 젊은이들이 한국 아이돌 공연을 꿈에도 침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열광하듯이 말이다. 이들 언론만 짐짓 훈련병처럼 심각하다.

※ <한국방송대학보> 제1633호(2011년 6월 20일치)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