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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언론자유 70위의 민낯, 선정성

<문화방송>의 ‘뉴스데스크’가 각목 살인 장면이 담긴 폐쇄회로TV 화면을 여과없이 내보냈다가 뭇매를 맞고 있지만, 난 그 매질에 흔쾌히 동의할 수 없다. 마땅히 매를 맞아야 할 데가 문화방송(뿐)인가. 여론은 공영방송사가 본분을 망각한 시청률 경쟁을 벌인다고 질타하고 있지만, 먼저 판단해야 할 것이 있다. 문화방송은 과연 ‘공영방송’이 맞는가.

문화방송은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대주주이자 관리감독 기구이고, 방문진은 정부의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이사진을 임명하는 법률기관이다. 소유·지배 구조가 다소 복잡하지만, 이 구조야말로 문화방송의 고유한 정체성, 즉 ‘국영’이 아닌 ‘공영’을 규정하는 핵심이다. 문화방송은 정치권력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 것이며,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거버넌스의 대상이다. 법전 바깥의 현실은 어떤가.

문화방송은 현 정부 출범 직후부터 폭풍에 휩싸였다. 정부는 서둘러 방문진 이사진을 친정권 인사들로 채웠고, 방문진은 다시 문화방송 사장을 반강제로 교체했다. 새 사장은 대통령과 돈독한 관계의 인물이었다. 그의 첫 인사를 마뜩찮게 여긴 청와대가 그를 불러들여 ‘조인트를 깠다’는 얘기가 방문진 이사장 입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문화방송의 현실은, 적어도 경영진에 있어서 ‘국영’이 되었다.

그 뒤 새 사장은 문화방송을 대표하는 시사 프로그램들을 잇따라 폐지하고, ‘PD수첩’ 제작진을 전보했다. 그의 시사 프로그램 기피증은 라디오 간판 시사 프로그램의 걸출한 여성 진행자를 하차시키려고 그녀의 뒤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지경으로 비화했다.

공영방송의 국영화가 프로그램에서는 선정성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전두환 정권 당시 이른바 3S(Sex, Sports, Screen)의 탈정치화 전략은 30년 뒤 고스란히 반복된다. ‘뉴스데스크’는 경쟁사인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의 ‘9시쯤 뉴스’와 진정한 경쟁을 벌인다. 앵커는 개그맨 못지않은 입담을 뽐내고, 기자는 게임과 청소년 폭력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겠다며 느닷없이 피시방 전원을 내리는 촌극을 벌인다.

“이라크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의 이라크 무차별 공습을 <CNN>이 전자오락 이미지로 유통시킨 것에 대한 장 보드리야르의 일갈이었다. 그가 말한 ‘시뮬라크르’(Simulacre)는 한국 정치권력과 그 하수인의 탈정치화 기획을 타고 안방 TV 뉴스 화면으로 흘러들어 각목 살인 장면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재현됐다. 그리고 이제 공안검사 출신이 위원장으로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그 프로그램을 징계하겠다고 나섰다.

미국의 보수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매긴 순위에서조차 70위에 그친 한국 언론자유의 풍경은 더없이 외설적이다.

※ <한국방송대학보> 제1629호(2011년 5월 23일)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