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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들어는 보셨습니까, 미디어위?

여당 추천 위원들 식물조직 되고, 일부 신문들 애써 눈감고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미디어위)라는 국회 내 사회적 논의기구가 있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구성돼 100일간의 활동에 들어갔다. 탄생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언론노조의 두 차례 총파업과 시민들의 여의도 촛불집회, 국회 안에서의 몸싸움 등이 먼저 있었다. 혹한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건 한나라당이 강행처리를 시도한 이른바 ‘미디어 관련법’들이다.
 
여러 법안에 걸쳐 있는 쟁점을 간추려보면, 대기업과 신문의 지상파 및 종합편성채널 진입 허용 여부로 좁혀진다. 한국사회 여론다양성의 식생을 좌우할 결정적인 내용이다. 미디어위 위원들은 국회라는 정파적 의사결정 구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들 법안에 대한 국민의견을 수렴해 합의안을 도출하라는 무거운 소명을 부여받았다.

     

▲ 지난 5월20일 광주광역시 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열린 미디어위 지역 공청회 모습.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활동은 지지부진하다 못해 식물 상태다. 더 가관인 건 그 속사정이다. 여당 추천 위원들이 활동 반경을 한사코 축소시키려 하고 있다. 야당 추천 위원들의 국민 여론조사 요구에 집단으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역공청회도 마지못해 시늉만 하다, 시민들의 질문이 쏟아지는 데도 공익요원 칼퇴근 하듯 끝내버린다.

여당 추천 위원들의 여론조사 반대 논거는 “이런 복잡한 사안에 대해 어떻게 일반국민의 의견을 묻느냐”는 거다. 겸양이 아니라 엘리트주의다. (이미 여러 차례 여론조사에서 미디어 관련법에 대한 여론은 일관되게 ‘반대 우세’로 나왔다.) 이들의 목표는 미디어위가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해 여당 법안이 그대로 관철되도록 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래서 한국기자협회, 한국피디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가 최근 전문기관에 맡겨 방송 및 신문기자(500명)와 언론학자(300명) 등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벌였다. 여당 추천 위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전문가’들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조사 결과, 재벌 대기업·신문의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진출에 70% 안팎의 전문가들이 압도적인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미디어 관련법은 방송 진출을 노리는 일부 대형신문들이 미디어위 출범 전까지도 온갖 관련보도를 쏟아내던 사안이다. 물론 일방적인 내용 일색이었다. 돈을 들여 국외취재까지 마다하지 않던 이들은, 그러나 최근 이 문제에 대해 일제히 침묵하고 있다. 이들 신문에게 미디어위는 존재하지 않는 기구나 다름없다. 전문가 여론조사 결과를 찾아볼 수 없는 것도 당연하다.

여당 추천 위원들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일부 대형신문사들은 사익을 위해 공적 의제에 대한 배제를 일삼고 있다. 이 또한 자신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꼴이며, 이들이 방송을 소유했을 때 펼쳐질 앞날에 대한 뚜렷한 예고이기도 하다.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43호(2009-06-08)에 실린 글입니다.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