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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고교등급제, 계급과 교육의 불순한 야합

[분석] 한국사회에서 고교등급제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 한겨레에서 일할 때 고교등급제와 관련해 썼던 글입니다. 고교등급제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기에, 옛글을 찾아 띄워 봅니다. 당시 한겨레는 탐사보도를 통해 대학들이 음성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고교등급제 실태를 폭로했습니다. 그 문제가 검찰 수사까지 이어진 터라, 고교등급제에 대한 대학당국의 불온한 욕망이 꺾일 것이라 기대했었습니다. 순진했던 거죠. 저들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교육모리배들입니다. 


연세·이화·고려대 등 3개 대학이 고교등급제를 시행해왔다는 교육부 실태조사가 발표된 뒤, 한국사회가 ’고교 등급제’ 후폭풍에 휩싸여 있다. 고교등급제를 둘러싼 논의가 확산되면서 고교등급제는 일부 대학의 문제를 넘어, 지역간- 사회계층간 갈등양상으로 옮아가고 있다. 이런 논의전개에 따라 고교등급제가 가져온 ‘후폭풍’의 갈등 양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고교등급제가 부른 지역간-사회계층간 갈등은 잘못된 것이고, 이를 피해야만 하는가? <한겨레>는 고교등급제가 불러온 사회갈등적 측면을 취재했다. 편집자 


계층갈등·사회분열은 안 된다고? 그러나 갈등과 분열은 지속될 것

일부 언론은 말한다. 고교 등급제가 계층갈등으로 비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사회분열을 심화시켜서도 안 된다고. 서울 강남권에 살지 않는 국민의 절대다수가 고교 등급제에 분개하고 있을 때, 이들은 고교 등급제 자체보다는 고교 등급제를 둘러싼 갈등과 혼란을 무엇보다 근심한다.

하지만 현상유지와 조화를 강조하는 이들 언론의‘우국충정’은 부질없어 보인다. 계층갈등으로 비화되어선 안 되고 사회분열을 심화시켜서도 안 되는 고교 등급제가 정작 그 제도 안에 스스로 계층갈등과 사회분열의 폭약을 품고 있는 탓이다.

차별을 전제로 하는 이 제도로부터 차별받았다고 생각하는 절대다수의 비강남 국민들이 존재하는 한, 일부 주류 언론이 여론시장의 담론을 지배하는 건 역부족이다. 그리하여 논란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되고, 갈등과 분열은 비화되고 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교 등급제를 건조하게 정의해보면, 대학들이 입시에서 출신 고교에 따라 차등적으로 점수를 가산하는 전형 방식을 일컫는다. 물론 교육관련 법이나 각 대학의 학칙으로 정해진 바 없다. 단지 대학들이 스스로, 짬짜미로 시행해왔을 따름이다. 해당 대학들이 한사코 고교 등급제(制)는 없다고 항변하는 것도, 이 제도의 이런 비공식성에 기대어 부리는 응석이나 애교다.

그러나 문제는 고교 등급제의 본질이 그리 건조하지도 않고, 응석이나 애교로 해결될 성질의 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많은 정치학자, 사회학자, 철학자, 교육학자들은 고교 등급제를 지금의 한국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라고 입을 모은다. 고교 등급제 안에는 그만큼 인문사회학적 함의가 듬뿍 담겨있다는 얘기다. 다만, 그 창으로 들여다보이는 풍경은 많은 사람들에겐 썩 유쾌하지 못한 느낌으로 와닿는다.


고교 등급제는 한국 대학의 게으름…게으름은 서열화 안주 탓

고교 등급제는 무엇보다 한국 대학들의 게으름을 드러내준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철학과)는 “무릇 대학이라면 학생의 잠재성을 찾아내 제대로 교육을 시켜 내보내야 하는데, 우리 대학들은 미리 교육된 학생들을 뽑아다 방목하고 있다”며 “고교 등급제는 우리 대학들이 손쉽게 성적 우수 학생을 뽑으려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상봉 ‘학벌없는 사회’ 운영위원도 “고교 등급제는 일부 대학들이 수시전형을 우수학생 입도선매 기회로 삼으면서 나온 편법”이라며 “그들이 말하는 우수학생이란 사교육을 통해 길러진 입시 선수”라고 말했다.

한국 대학들이 게으른 건 왜일까. 홍윤기 교수는 “대학 서열화의 틀 안에서 1등급 대학은 1등급에 안주하고 2등급 대학은 2등급에 안주하기 때문”이라며 “이러다 보니 대학은 교육하는 곳이 아니라 학벌을 만드는 곳이 돼버렸고, 이런 대학들이 고교 등급제를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고교 등급제는 대학 등급제 또는 서열 구조의 말없는 반영이거나 확장이라는 얘기다.

대학들의 이런 태도는 고교 등급제 옹호의 논거로 내세우는‘우수학생 선발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나 ‘현실적 학력 격차 인정’이라는 주장을 스스로 무안하게 만든다. 입시에서 단 1, 2점의 점수차를 우수와 비우수의 절대기준으로 삼아온 이들 대학이 이젠 고액 사교육으로 중무장한 학생들을 우수 학생으로 평가하고, 그런 학생들이 몰려사는 강남지역을 우수학생의 텃밭으로 보고 입도선매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학력 격차와 이에 따른 국가경쟁력의 차이는 실체가 있는 것일까. 격차가 있다면 왜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격차는 정당한 것일까.

박거용 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 운영위원장)는 “고등학생의 학력은 결코 국가경쟁력이 아니다”며 “우수 학생 뽑아다 바보 만들어 내보내는 경쟁을 할 게 아니라 고등학생의 학력 격차를 크게 신경쓰지 않고 뽑아서 잘 교육해서 내보내는 경쟁을 하는 게 국가경쟁력을 생각하는 대학다운 태도 아니냐”고 물었다.


학력격차와 국가경쟁력의 실체는 있나? 격차는 정당한가?

설령 학력 격차가 있고, 그 격차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한다고 해도, 그 격차가 생겨난 과정이 정당하지 않다고 인문사회학자들은 지적한다. 고교 등급제가 입시제도의 문제만이 아닌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초(超) 입시제도로서 고교 등급제의 중심에는 한국 사회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강남’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김상봉 운영위원은 “강남은 왜 강남이냐”고 반문한다. 우리나라 사교육의 메카로 알려지면서 집값이 뛰고, 이젠 우리나라 최상류 계층이 모여 사는 곳. 최상류 계층과 최고의 교육환경, 이에 따른 최고의 교육성과가 삼박자로 물려돌아가는 곳이 강남이라는 것이다. 그는 고교 등급제가 강남의 이런 차이를 인정하고 제도화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교양학부)는 “70년대 개발독재 시대 이래 특정지역개발촉진법 등 몰아주기식 성장으로 불로소득의 부를 쌓아올린 곳이 바로 강남”이라며 “고교 등급제는 이미 하나의 신분 코드가 된 강남이 그 이름만으로 교육에서 특별대우를 받게 되는 걸 뜻한다”고 말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외과)는 고교 등급제를 교육의 계급화로 규정한다. 손 교수는 “고교 등급제를 둘러싼 갈등은 공부를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갈등이 아니라, 심하게 말하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지역 등급에 따른 교육기회의 차이를 놓고 벌이는 변형된 형태의 계급투쟁”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교 등급제는 계급을 공식화할 뿐 아니라 계급을 대물림해 한국을 계급상승의 유동성이 없는 ‘닫힌 계급사회’로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사회의 지배구도를 완성하려는 정치행위”

일부에서는 이들 대학의 고교 등급제를 한국 사회의 지배구도를 완성하려는 정치적 행위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행위는 다분히 음모적이라고 지적한다.

홍성태 교수는 “고등학생들의 학력격차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강남 학생들은 무더기로 합격시키면서 강북 학생 단 한 명 붙이기는 것도 그리 인색할 수 있는가”라며 “국내 최고의 사학이고 사학의 모범이라고 자처하며 교수들에게 가장 많은 월급과 명예까지 주는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가 겨우 고교 성적 우수 학생을 좀더 얻자고 학교 전체가 나서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대국민 사기 범죄를 저질렀겠느냐”고 되물었다.

홍윤기 교수는 “고교 등급제를 시행한 대학들은 사회적 특권층을 자기 대학의 동문으로 묶어 자기 대학을 특권층 카르텔의 한 부분으로 끼워넣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성태 교수는 더 나아가“이들 대학은 이미 강남의 한 부분이며 그 자체가 강남”이라며 “강남 개발을 통해 부와 기득권을 쌓은 이들이 이제 대학을 통해 학력을 장악한 뒤 기득권을 확대재생산하고 대물림하는 계급의 폐쇄회로를 완성하려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역 고교등급제’가 시급하다

일부 언론이 고교 등급제 자체보다 이에 따른 갈등을 깊게 근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1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열린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기자회견을 앞두고 한 택시기사가 거리에 차를 세워둔 채 “안병영 장관 나와라. 못 사는 것도 서러운데 차별이 웬말이냐”며 한동안 소동을 벌인 일이 있었다. 강남을 위한 짬짜미 고교 등급제 시행 사실을 안 전국의 비강남 국민들의 심사는 복잡할 겨를조차 없이, 이처럼 직설적이다.

김상봉 ‘학력없는 사회’ 운영위원은 “고교 등급제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병리를 드러냈지만,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자들의 욕심이 지나쳐 자충수가 되고 말았다”며 “입시의 공정성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에 상처를 입은 국민들이 고교 등급제를 통해 대학 서열화가 갖는 계급적 함의를 깨닫기 시작한 지금이 학벌제 사회를 깰 수 있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정으로 이 사회가 갈등이나 분열에 휩싸이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젠 ‘현실적 학력 격차’나 ‘국가경쟁력 강화’를 강변하기 보다 ‘역 고교등급제’를 서두르는 게 어떨까. 계층적으로, 지역적으로 열세에 있는 고교에 파격적으로 국가예산을 지원해 제대로 된 공교육을 받게 하고, 대학들도 이들 지역 학생들을 우대해 정성들여 교육한다면, 적어도 영업을 중단한 채 교육부 건물에 대고 삿대질하는 택시기사는 나타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