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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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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는 상처입은 야수인가? 주류언론의 현지 르포, 약자를 타자화하는 지배윤리의 시선 “선량한 시민과 폭도는 구별되지 않았다. 아이티 대지진 엿새째. 외국 구호단체를 반기는 것은 굶주린 손길이 아니라 이성을 잃은 약탈자들의 정글칼이었다.” 지난 1월 19일 1면 기사의 첫 단락이다. 기사 위에는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무너진 상점 앞에서 시민들이 물품을 차지하려고 서로 드잡이하는 사진이 실렸다. 사진은 군중 가운데 칼을 들고 상대를 위협하는 남성을 클로즈업으로 잡았다. 기사의 제목은 ‘그들의 눈빛이 변해간다’였다. 이 인상적인 문장과 사진, 제목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약대 구실을 하며 삼위일체의 매우 강력한 이미지를 구성한다. ‘인면수심’. 아이티 현지에서 쓴 르포기사지만, 이 신문의 시선은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고 있다. 기자가 ..
‘이메일 첨삭’ 알바 뛰는 검사님 [미디어스 데스크] 2009 대한민국 ‘감시와 처벌’ 안영춘 편집장 jona01@mediaus.co.kr 1-1.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panopticon·원형감옥)은 공간 기획을 넘어선 심리 기획이다. 감옥 둘레를 따라 둥근 원통 모양의 건물을 세운다. 내부를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감방이 층층이 배치된다. 감옥 한가운데에도 원통 모양의 감시탑이 세워진다. 간수 한 사람이 사방을 둘러보며 죄수 전원을 감시할 수 있으니 대단히 효율적이다. 하지만 진짜 효율은 ‘간수 숫자 대 죄수 숫자’ 비율로 산출되지 않는다. 죄수들은 간수가 감시탑에 있는지 없는지, 감시하는지 하지 않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러니 간수가 없어도, 혹은 그 안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어도 상관없다. 죄수들은 ‘자기검열’로 스스로를 통제한..
‘PD수첩’ 기소와 오럴섹스 금지의 공통점 막걸리 보안법 시대로 퇴행하는 대한민국 검찰 검찰의 제작진 기소와 관련한 기사들을 읽다가 오래 잊었던 약속처럼 퍼뜩 떠오르는 소설 한 편이 있었다. 대학생 때 읽었던가. 최일남의 단편 이었다. 소설에는 단 한 군데에도 ‘암울한 시대상’ 따위의 직설적인 언급은 없었다. 맘만 먹으면 책 쥔 손 한 번 내려놓지 않고도 독파할 수 있을 만한 분량의 글은 내내 무표정하기만 했다. 하지만 읽는 이의 가슴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잿빛으로 ‘젖어’들었다. 소설은 ‘일상이 감옥이면 고통이라고 해서 무덤덤해지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라고 나직이 묻고 있는 듯했다. 무대는 서울 무교동의 한 낙지볶음집. 근처 신문사에 다니는 기자들이 무력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석탄 같은 가슴으로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한숨 섞인 대화를 나누는 ..
‘피디 저널리즘’ 얕보는 ‘기자 저널리즘’께 그 차별과 배제의 인식론이 갈수록 초라해지는 현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기자 저널리즘’과 ‘피디 저널리즘’이라는 개념 구분이 있다. 구분이란 비교를 거쳐 그 차이점을 도출한 뒤 카테고리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어야 할텐데, 나는 그것이 뭔지 잘 모르겠다. 기자가 하면 기자 저널리즘이고 피디가 하면 피디 저널리즘이라는 정도라면 굳이 구분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짐작가는 대목이 없진 않다. 이런 구분은 기자 저널리즘은 ‘기록’을, 피디 저널리즘은 ‘연출’을 중시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경향적으로 그럴 수는 있겠다. 신문 기사나 방송 리포트는 분량이 짧다보니 사실관계만 압축해 전하는 기법이 발달했다. 이에 견줘 방송 시사 프로..
언론의 위기, 벼랑 끝에 선 한국 민주주의 미디어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한 인식전환을 제안함 이 글은 5·6월호에 실은 글입니다. 격월간지 특성상 글이 깁니다(200자 원고지 70매). 쉬엄쉬엄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붕어빵에는 붕어 비늘 하나 들어 있지 않고, 칼국수를 삼키더라도 날카로운 칼날에 베이는 일은 없다.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은 푸름의 가치(생태/평화/공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저 빨주노초파남보 가운데 하나를 골라잡은 색도(色度)의 관형어일 뿐이다. ‘녹색’이라는 관형어의 부채꼴 양쪽 끝은 아득히 멀다. 녹색과 민족주의 우생학이 만나면 인종대청소의 이데올로기인 나치의 ‘에코파시즘’이 태어나고, 녹색과 안전에 대한 이기적 집단욕망이 결합하면 공해산업 국외덤핑 같은 제1세계의 ‘에코임페리얼리즘’이 번창한다. 이들 둘의 공통점은 ‘..
언론이 법원 판결을 ‘활용’하는 풍경들 매개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왜곡한 뒤 두고두고 확대재생산 법원의 판결 결과는 대개 개인에게 귀속되지만, 결국 사회적 규범을 규정하는 구실까지 하게 된다. 이때 법원과 사회를 매개해주는 것은 역시 언론이다. 그만큼 언론의 판결 보도와 해석은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고, 오히려 언론이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97년과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두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이 큰 논란이 됐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2004년 병무 비리 전문가 김대업씨에게 무고와 명예훼손 등으로 징역 1년10월을 선고했다. 대다수 언론은 김씨를 ‘공작정치의 대가’라고 낙인찍었다. 그 낙인은 2007년 대선에서 “BBK 의혹 역시 공작정치”라는 정치선전에 동원됐다. 그러나 김씨가 ..
방통심의위, 온국민 금잔디·구준표 만들다 [방통심의위 해체 프로젝트] ① 프롤로그 방통심의위의 이녁들에게. 이녁들의 존재양식은 절묘함 자체다. 민간인도 아니면서 공무원도 아닌 것이, 처자식 먹여살리려는 이기적 동기로 일하는 노동자보다 오히려 국가발전에 보탬이 안 되고, 군대 대신 사회에서 시간을 죽이는 무기력하고 무료한 공익근무요원보다 훨씬 덜 공익적이기까지 하다. 이건 그야말로 박쥐의 존재양식이라 부를 만한데, 박쥐라면 이녁들은 단연 황금박쥐다. 이녁들은 나같은 우수마발은 꿈도 꿀 수 없는 막강권력을 가졌다. 하지만 사고능력은 단세포, 미토콘드리아다. 가장 무서운 권력은 ‘무식하면서 용감한’ 권력이다. 이녁들은 충분히 위험한 존재들이다. 초등학교 학급회의 수준보다 저열한 주장을 펼치는 걸 참다못해 야당 추천 3명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자 이명박..
PD수첩은 ‘언어 전쟁’이다 제 블로그에 들어와 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군요. 공과 사의 균형이 무너지고, 하루하루 정신없는 나날입니다. 무엇보다 글 쓸 시간이, 그럴 만한 마음의 평정을 찾을 겨를이 없습니다. 얼마 전 한 영화잡지에 발표했던 글을 올립니다. 제가 지은 집에 스스로 찾아올 기회가 많아지길, 그리하여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여유를 되찾기를 바라고, 벼릅니다. 휴~ PD수첩은 ‘언어 전쟁’이다 15년 동안 이름 석 자 뒤에 ‘기자’라는 호칭을 달고 살면서, 난 언론인이 1인분의 용량을 넘어서는 직업인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를 포함해 적지 않은 언론인들이 자신의 능력과 인격의 용량보다 큰 ‘사역’을 감당하고 산다. 비슷한 부류의 직업인으로 종교인, 교육자 등을 꼽을 만한데, 지식노동을 한다는 것 말고도 이들에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