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선일보

(14)
왜 마스크를 벗지 못할까 지난 2일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지만, 막상 거리에서 마스크 벗고 다니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해제 시기를 두고 ‘신-구 권력 갈등’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걸 생각하면 머쓱할 지경이다. 아직 초기여서일 수도 있겠으나, 사람들이 제야의 종 카운트다운하듯 마스크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할 거라는 합리적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속옷 벗는 것 같아서’ 유의 말을 흔히 하는 걸 보면, 개인방역 차원의 신중함 때문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마기꾼’(마스크+사기꾼)이라는 신조어는 마스크의 미학적 쓸모를 시사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지난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템플대 연구팀은 얼굴 사진 30개에 마스크를 씌우지 않은 때와 씌운 때 사람들의 반응을 비교했다. 남녀 사진 모두 마..
오빠와 감독님 우리말 가운데 쓰임새가 가장 넓고 다양한 건 ‘거시기’일 것이다. 전라도 분인 내 아버지는 1분간 전화 통화를 할 때 평균 6차례 “거시기”를 구사하는데, 곁에서 듣고 있노라면 도대체 어떻게 의사소통이 가능할까 싶을 지경이다. 기호는 맥락 위에서 상호 교집합이 형성될 때 비로소 기능한다. 교집합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기호는 은어의 성격을 띠게 된다. 백제군이 구사하는 ‘거시기’는 신라군에겐 요령부득이다(영화 ). ‘거시기’ 다음은 ‘빨갱이’이지 싶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어르신들이 얼마 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집회를 했는데, 박근혜 의원에게 완전국민경선을 요구하는 이재오, 김문수, 정몽준 의원을 “빨갱이”라고 비난했다. 전향 우파인 이재오, 김문수 의원이야 과거를..
‘여론 다양성’에 대한 다양한 시선 이름값 높은 연예인이나 예능 피디가 거액을 받고 종합편성채널(종편)로 간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하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건 그 쪽이 아니다. 기자 영역은 가히 엑소더스 수준이다. 수도권의 지역 민방 보도국은 정상적인 뉴스 제작이 어려울 만큼 많은 인력이 종편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인력 유출이야 무슨 수로든 메울 수 있지만, 종편 출범과 함께 맞게 될 광고 매출 감소는 당장 지역 매체들을 생존의 위기로 내몰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애초 정부와 조·중·동의 종편 허가 논리는 ‘여론 다양성 높이기’였다. 방송3사의 여론 지배력이 너무 높기 때문에 방송사 몇 개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관변 언론학자들이 언죽번죽 엄호했다. 이들이 교묘한 이론과 통계를 제시하면 조·중·동이 확대재생산했다. 이들..
‘자본주의 4.0’의 복화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드디어 끝났다”라고 쓰려는 순간, 다시 일이 터졌다. 한쪽이 충격을 받을 때 다른 한쪽은 쾌재를 부르는 제로섬의 순환구조인 걸 보면, 무상급식 문제는 사실상 진영의 정치적 이해에 종속된 무늬만 복지 의제라고 하겠다. 주민투표가 끝나자마자 검찰이 피의사실을 흘리고 나선 것 자체가 가장 적극적인 정치행위였다. 진실의 문제를 떠나, 이런 식의 ‘정치 과잉’은 곧 ‘담론 부재’와 이면관계에 있다. 무상급식은 여태 상징의 깃발만 나부끼는 불모의 의제였다. 무상급식을 하면 나라가 거덜날 것처럼 떠들어대는 목소리에서는 이성의 풀싹조차 찾아볼 수 없지만, 그 반대 진영이라고 해서 무상급식 ‘너머’를 제대로 통찰했는지는 의문이다. 설령 전략적 선택이었다 해도, 선별급식..
극우 저널리즘과 광신적 테러리스트의 만남 모든 사안에서 언제나 논리가 명쾌했던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도 이번에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로 탄식이 새어나왔다. 평소 노르웨이 사회가 외부 약탈을 통해 내부의 사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며 비판적 긴장을 유지해오던 그였지만, 이번 사건만큼은 발생 개연성조차 내다보지 못한 듯했다. 그는 끝내 말을 아꼈다. 물론 브레이비크 테러 사건이 터지기 전에도 유럽에서 극우주의적 징후는 뚜렷했다. 올 1월호는 유럽 각국의 극우파들이 최근 어떻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했다. 지난 2년간 유럽 극우 정당들은 선거에서 득표율 10%를 넘어섰고, 몇몇 국가에서는 15%를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광신적이기는커녕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이며 제도권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이번 테..
드라마 문법으로 본 카이스트 사태 어느 날 어린 딸아이가 TV를 보다 말고 툭 내뱉는 말이 걸작이었다. “드라마에서 가장 형편없는 죽음은 교통사고로 죽는 것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죽이고 끝낸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이유 없는 죽음은 아니다. 드라마를 끝맺어야 하는 제작자가 개연성에 기대어 고민을 간단히 해결하려는, 이유 있는 죽음이다. 드라마뿐이겠는가. 현실 세계에서도 다른 누군가에 의한, 누군가를 위한 개연적 죽음은 숱하다. 최근 카이스트 학생들이 잇달아 자살을 하고, 교수 한 사람도 스스로 목숨을 끊자 언론들이 대서특필하고 나섰다. 언론은 흔히 정치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죽음에 등급을 매긴다. 보도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느 정도 크기로 보도할 것인가…. 입시 스트레스나 좌절로 목숨을 끊는 고등학생이 한 해 줄잡아 100명이 넘지만,..
아이티는 상처입은 야수인가? 주류언론의 현지 르포, 약자를 타자화하는 지배윤리의 시선 “선량한 시민과 폭도는 구별되지 않았다. 아이티 대지진 엿새째. 외국 구호단체를 반기는 것은 굶주린 손길이 아니라 이성을 잃은 약탈자들의 정글칼이었다.” 지난 1월 19일 1면 기사의 첫 단락이다. 기사 위에는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무너진 상점 앞에서 시민들이 물품을 차지하려고 서로 드잡이하는 사진이 실렸다. 사진은 군중 가운데 칼을 들고 상대를 위협하는 남성을 클로즈업으로 잡았다. 기사의 제목은 ‘그들의 눈빛이 변해간다’였다. 이 인상적인 문장과 사진, 제목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약대 구실을 하며 삼위일체의 매우 강력한 이미지를 구성한다. ‘인면수심’. 아이티 현지에서 쓴 르포기사지만, 이 신문의 시선은 외부에서 내부로 향하고 있다. 기자가 ..
조선일보, 경찰,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칸트 [미디어스 데스크] 미디어스 사이트 개편에 부쳐 1. 가 ‘오랜만에’ 탤런트 고 장자연씨 자살 사건을 대서특필했습니다. 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다음날인 지난 25일이었습니다. 1면 사이드 기사와 함께 8~9면을 털고 사설까지 동원해 도배를 했습니다. 그 많은 내용 가운데 7할이 조선일보의 “자사 특정 임원”과 관련한 내용이었습니다. 다른 언론들이 ‘○○일보 ○ 사장’이라고 표기해왔던 바로 그 인물 말입니다. 그동안 조선일보는 “자사 특정 임원”이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한 차례도 스트레이트 기사로 보도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자기네가 국회의원 아무개 아무개와 일반시민 아무개 등을 고소했다는 기사나, 자사 임원에 대한 터무니없는 모함인 게 밝혀지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