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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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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는 무엇으로 애도인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의 대응을 묻는 기자에게 “××자식”이라고 한 것은 그저 욕설로만 들리지 않는다. 문제의 표현은 특정한 출신 배경을 가진 이에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표지를 붙인 데 연원을 두고 있다. 이 대표는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질문자의 자격을 따졌고, 그 자리가 박 시장의 빈소였던 맥락까지 고려하면 ‘애도자로서의 자격’을 따졌던 셈이다. 그의 욕설을 순화해 재구성하면 “당신은 애도자로서 자격 미달입니다”쯤 되지 않을까. 빈소에서 기자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논쟁적일 수 있다. ‘굳이 그 자리여야 했을까’라고 물으면 여러 논거로 찬반이 갈릴 것이다. 한국기자협회가 이 대표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낸 것은 ..
어느 날, 홀연히 봉하마을에 다녀오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 기고]인간과 정치를 분리하는 담론의 외설성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는 이 글을 청탁받는 것과 함께 ‘생활의 발견’ 풍으로 내게 찾아왔다. 잊고 지내던 이의 부음이 들려오면 봉투에 담을 돈의 크기를 찰나 가늠하는 풍경처럼 말이다. ‘생활의 발견’에 빗대면, 연인에게 이별을 선언하다 말고 삼겹살집 주인에게 생고기인지 냉동고기인지 따져 묻는 것처럼. 아니 그 반대로, 고기의 냉동 여부를 천진하게 묻다가 별안간 정색하고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활의 발견’은 내게 꽤나 어려운 텍스트다. 웃음은 괄약근이 풀리듯 터져 나오지만, 가슴 속에는 자잘한 이슬이 맺히게 한다. 웃음과 울음이 상극인지, 서로 다르기는커녕 분리조차 할 수 없는 것인지, 그 순간 판단이 서지 ..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가 다가온다. 1년 만에 그는 다시 한국 정치의 한복판으로 호출됐다. 그를 적대했던 세력도, 그를 호가호위했던 세력도 그 이름 석 자에 정치공학적 상상력을 있는대로 우겨넣고 있다. 1년 전 김진숙 지도위원이 쓴 아래 글을 읽었을 때, 난 가슴이 저렸다. 비슷한 무렵, 내가 썼던 글(노무현, 그 이름에 동의하지 않았던 자들의 슬픔)은 발로 그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글은 자칭 진보진영의 어느 인사 글보다 진정성으로 가득했고, 그는 노무현을 온전히 송별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시 노무현을 환기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철지난 유행가처럼 맥없다. 솔직하지 않거나 맹목적이어서가 아닐까 짐작한다. 1년 전 이 글이 오히려 생생하다. 노무현을 있는 그대..
2009, 탄핵의 추억 [미디어스 데스크] 검찰·정권의 모호성·소음 전략의 손익계산 미디어스 안영춘 편집장 jona01@mediaus.co.kr 지난 2004년 봄,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의 후폭풍은 수 계산에만 능한 프로 정치꾼들의 한심한 인식능력을 폭로했다. 주권자인 국민이 탄핵소추를 그저 ‘게임’으로 볼 거라는 전제를 깔고 일을 저질렀는데, 주권자들은 그걸 자신들에 대한 ‘겁박’으로 읽었다. 자신들이 직접 뽑아 1년 남짓 지난 대통령을 임기가 두어 달밖에 남지 않은 묵은 대의제 권력이 억지 논리를 들어 축출하려 했으니, 주인이 화를 내는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역으로, 레임덕에 들어선 대통령이 새로 구성된 국회를 해산하려 해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주인의 심기를 누그러뜨릴 수 있는 건 시간밖..
‘박연차 게이트’ 수사결과 발표의 뒷풍경 이례적 규모 축소와 보도 제한…노 전 대통령 죽음 원인 흐리기 수사기관의 수사 결과 발표는 사건의 종지부 찍기가 아니라 화룡점정이다. 발표 내용이 피의사실 공표죄와 국민 알권리 사이에서 어떻게 경합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형식상 아무리 피의사실로서의 자격밖에 없더라도 대법원 판결과 다름없는 가치로 올라서고,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해 이데올로기적으로 확정한다. 설령 피의사실이 재판에서 뒤집어지더라도 이데올로기적 단죄가 제자리로 복원되지는 않는다. 수사기관이든 언론이든 또다른 사건에 매달려 같은 행태를 되풀이할 뿐이다. 정정훈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법원 판결에는 칼 맞은 이후 갑옷을 내주는 때늦음이 있다”고 표현했다. (‘칼’의 팩트를 견제하는 ‘펜’의 팩트를!) 대검찰청이 오늘(12일) 오후 3시 ‘박연차..
상복보다 더 시키먼 조중동K의 속내여 ※ 이 글은 제763호(2009.06.05)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대형 특별기획 표지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저는 그동안 외부에 발표한 글에 대해서는 해당 매체 인터넷이 기사를 공개하고 나면 와 제 블로그에서 ‘발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지만, 이번 글은 ‘발행’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6월4일 오후 에 톱기사로 걸려서, 같은 글 하나를 놓고 세 곳에서 ‘노출’하는 것이 민망해졌기 때문입니다. [표지이야기-분노의 기억] 족벌언론과 관제방송 KBS의 ’애도 저널리즘’…타살 공범관계 뒤덮으려 ‘탈정치’ 덧칠하다 당신은 슬프던가? 제호 아래, 5월의 폭우를 맨몸으로 맞고 선 봉하마을 추모객들의 먹물 같은 표정 사진은 당신 심장 안으로 삼투압되던가? 호외판 1면 가득 실린 망자의 얼굴 사진을 보며, 30m..
‘노무현’ 그 이름에 동의하지 않았던 자들의 슬픔 [미디어스 데스크] 그의 생전에 그에게 결코 ‘동의’하지 않았던 몇 사람이 어울려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그의 영결식이 치러지고 난 늦은 밤이었다. 노래는 내남없이 구슬펐다. 낮에 TV 생중계를 보거나 서울광장에 서서 한소끔 눈물을 몰래 훔친 것이, 일주일 내내 머리가 멍하게 아팠던 것이, 그 순간만큼은 쑥스럽거나, 이물스럽지 않았다. 그의 이념과 정책에 동의하지 않은 것과 그의 죽음에 연민하는 것은 모순돼 보이지 않았다. “꽃잎처럼 흘러 흘러 그대 잘 가라~” 나는 김광석의 ‘부치지 않은 편지’를 불렀다. 노래를 마칠 무렵, 그의 죽음과 관련해 글을 몇 편 쓰고도 정작 그이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삼스런 깨달음이었다. 안구 건조증이라도 걸린 게..
노무현을 기억하려는 자와 지우려는 자 [미디어스 데스크] 자살과 애도의 정치·사회학적 잡설 안영춘 편집장 jona01@mediaus.co.kr 고전주의 미학이라면 이럴 땐 비극적이되 장엄하고 숭고한 이미지라야 한다. 지금 한국의 대중매체들이 재현해내는 애도의 퍼포먼스가 꼭 그렇다. 톡톡 튀는 목소리로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여성 아나운서는 라디오 뉴스에서 느리고 낮은 목소리로 기사를 읽어 내려갔다. 신문 호외 편집도 더없이 무겁고 장중했다. 사람들의 보편적 심리상태도 그랬을 터였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오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소식을 처음 듣는 순간, 숙취로 절여진 내 전두엽을 치고 간 건 드라마 소품처럼 사소한 기억이었다. 경악하고 애달파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부조리해보였다. 내가 기억해낸 건 비교적 최근 누군가로부터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