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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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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짓는 이들은 왜 가두고 또 가두는가 30만톤급 유조선의 갑판 넓이는 축구장 3개(7140㎡×3=2만1420㎡)를 붙여놓은 것과 맞먹는다. 유최안이라는, 성씨 3개를 붙여놓은 듯한 이름의 마흔한살 노동자는 거제에서 그런 배를 짓는 일을 하는데, 건조 중이던 30만톤급 유조선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가로·세로·높이 1m인 철 구조물(1㎥) 안으로 178㎝의 몸을 욱여넣었다. ‘철 구조물’이라는 무덤한 표현은 ‘1㎥’만큼이나 많은 것들을 생략해 버린다. 구조물은 신체 절단 마술상자다. 유최안은 얼굴 따로, 두 팔 따로다. 두 발의 존재는 놓치기 쉽다. 앉은키가 비현실적으로 작아 보이는 것도 그 발 탓이다. 얼굴·팔은 그나마 제자리인데, 발은 있을 데가 아닌 곳에 내던져놓은 듯하다. 그 자리에 발이 있는 것보다 그에게 발이 있다는 사실이 아득히 애..
김진숙의 두 목소리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김 지도) 목소리에는, 메시지와 별개로 듣는 이의 가슴에 긴 사이클의 울림과 초단파의 각성을 동시에 남기는 파장이 있다. 에이엠(AM) 주파수와 에프엠(FM) 주파수의 특성이 한데 어우러진 듯한 형질이다. 2011년 여름 ‘희망버스’ 타고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가서 처음 들은 지상 35m 타워크레인 위의 연설은, 분명 사람의 소리를 넘어서는 소리였다. 수없는 망치질과 담금질로 단련된 금속성의 쩡쩡한 울림이 또렷했으나, 그것은 또한 물질의 소리를 아득히 넘어서는 소리였다. 그해 내가 매번 희망버스에 오른 데는 그 소리의 이끎에 몸을 내맡긴 면도 없지 않았다. 그의 몸속에는 목소리와 관련된 비해부학적인 기관이 있을 거라고 지금도 상상한다. 비해부학적이라면 태생적이 아닌 생애사..
애도는 무엇으로 애도인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의 대응을 묻는 기자에게 “××자식”이라고 한 것은 그저 욕설로만 들리지 않는다. 문제의 표현은 특정한 출신 배경을 가진 이에게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표지를 붙인 데 연원을 두고 있다. 이 대표는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질문자의 자격을 따졌고, 그 자리가 박 시장의 빈소였던 맥락까지 고려하면 ‘애도자로서의 자격’을 따졌던 셈이다. 그의 욕설을 순화해 재구성하면 “당신은 애도자로서 자격 미달입니다”쯤 되지 않을까. 빈소에서 기자가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는 논쟁적일 수 있다. ‘굳이 그 자리여야 했을까’라고 물으면 여러 논거로 찬반이 갈릴 것이다. 한국기자협회가 이 대표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낸 것은 ..
‘김진숙 지도’가 그린 별자리 거리의 투사로 변신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어느덧 보도사진 속에서 홀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사각 프레임을 가득 메운 지지자 무리는 황 대표 독사진의 기호학적 배경일 뿐이다. 여기 예외적인 사진 한장이 눈길을 끈다. 현장은 지난 9일 울산 울주 새울원자력본부 건물 앞. 황 대표 주위에 병풍을 선 이들은 붉은색 ‘단결 투쟁’ 머리띠에 똑같은 조끼를 갖춰 입고 있다. 손에는 ‘신한울 3, 4호기 건설 즉각 재개하라’고 쓴 팻말을 들었다. 한국수력원자력 노조원들이다. 이들의 이미지 위상은 단지 배경에만 머물지 않았다. 사진 구도로 보아 황 대표와 어깨 겯고 문재인 정부에 선전포고하는 모양새였다. 이들이 집단으로 황 대표를 지지하기로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신흥 극우 정치인과 이익동맹을 맺은 것만큼은 분명해..
그 버스의 행선지는 ‘희망’이다 * 이 글은 6월 12~13일 1차 희망의 버스를 타고 다녀온 뒤에 썼으며, 7월호(7월 9일 발행)에 실렸습니다. 7월호가 발행되던 날, 다시 1박2일 일정으로 2차 희망의 버스를 탔습니다. 부산 영도 일대의 스카이라인을 그리는 일은 이곳 부둣가를 따라 빽빽이 들어선 타워크레인들의 꼭짓점을 잇는 일이다. 멀리 지나치며 볼 때, 그 괴이한 철골 구조물들은 땅에 버티고 선 게 아니라 스카이라인에 주렁주렁 매달린 듯 보인다. 시인 기형도풍(‘안개’·1985)으로 말하면, 타워크레인은 이 도시의 ‘성역’이자 ‘명물’이다. 이곳에 처음 온 이들은 누구나 얼마 동안은 경계심을 늦추는 법 없이 낯선 크레인의 숲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라, 사람들은 쉽게 크레인과 식구가 되어, 그 사이를 ..
군국주의적 연예관 한국의 특정 연예기획사 소속으로, 주로 춤을 추고 돌아가며 노래를 섞는 무리들이 프랑스 파리에서 이틀 동안 떼공연을 할 때, 한국 대중문화계 장외 명사인 한 여배우는 부산 한진중공업 안의 무리 가운데 있었다. 몇몇 언론 보도에 따르면, 파리 공연은 유럽 각지에서 몰려온 팬들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이름하여 ‘K팝 인베이전(침공)’이었다( 13일치 2면 제목). 같은 날 이들 언론의 다른 보도를 보면, 부산 한진중공업에서는 문제의 여배우를 필두로 한국 경향 각지에서 온 ‘외부세력’이 난동을 부렸다. 제목은 이렇다. ‘국가보안시설인 방산업체에 노동단체 수백 명 난입’(같은 신문 12면). 프랑스에서 열린 공연에 대해 현지 지인들이 전하는 반응은 한국 언론 보도와 온도차가 컸다. 대다수는 공연이 열렸다는 사실을..
어느 날, 홀연히 봉하마을에 다녀오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 기고]인간과 정치를 분리하는 담론의 외설성 노무현 전 대통령 2주기는 이 글을 청탁받는 것과 함께 ‘생활의 발견’ 풍으로 내게 찾아왔다. 잊고 지내던 이의 부음이 들려오면 봉투에 담을 돈의 크기를 찰나 가늠하는 풍경처럼 말이다. ‘생활의 발견’에 빗대면, 연인에게 이별을 선언하다 말고 삼겹살집 주인에게 생고기인지 냉동고기인지 따져 묻는 것처럼. 아니 그 반대로, 고기의 냉동 여부를 천진하게 묻다가 별안간 정색하고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활의 발견’은 내게 꽤나 어려운 텍스트다. 웃음은 괄약근이 풀리듯 터져 나오지만, 가슴 속에는 자잘한 이슬이 맺히게 한다. 웃음과 울음이 상극인지, 서로 다르기는커녕 분리조차 할 수 없는 것인지, 그 순간 판단이 서지 ..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가 다가온다. 1년 만에 그는 다시 한국 정치의 한복판으로 호출됐다. 그를 적대했던 세력도, 그를 호가호위했던 세력도 그 이름 석 자에 정치공학적 상상력을 있는대로 우겨넣고 있다. 1년 전 김진숙 지도위원이 쓴 아래 글을 읽었을 때, 난 가슴이 저렸다. 비슷한 무렵, 내가 썼던 글(노무현, 그 이름에 동의하지 않았던 자들의 슬픔)은 발로 그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글은 자칭 진보진영의 어느 인사 글보다 진정성으로 가득했고, 그는 노무현을 온전히 송별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시 노무현을 환기하는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철지난 유행가처럼 맥없다. 솔직하지 않거나 맹목적이어서가 아닐까 짐작한다. 1년 전 이 글이 오히려 생생하다. 노무현을 있는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