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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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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레슬링으로 본 오늘 한국 5월29일치 ‘왜냐면’에 실린 글이다. 쪽에 꼭 실어달라고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해서, 겨우 실렸다. 살면서 매체에 글 실어달라고 청탁해보기는 처음이다. 본디 저널적 글은 선도가 생명인데, 시간을 오래 끌어 물이 갔다. 자존심도 상하고 민망하기도 했지만, 어느 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했다. 신문에서는 군데군데 서너 문장이 잘렸다. 분량이 넘쳤나 보다. 아프다. 나도 늘 다른 사람 글을 자르면서 필자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해왔는데, 아픔을 느끼는 인간의 몸은 모두 개별적이어서, 그 간극을 넘어설 수 없나 보다. 아래 글은 신문에서 잘린 대목까지 다 담은 원문이다. 얼마 전 지율 스님이 전화를 걸어오셨다. 한숨을 폭 내쉬신다. 그날 에 실린 칼럼(‘아니면 말고’ 선동, 3진아웃 시켜야)을 보시고, 말 ..
지율스님이 ‘정정보도’에 빠진 이유 [미디어스 데스크] ‘수의 악령’을 깨기 위한 또다른 결가부좌 안영춘 편집장 jona01@mediaus.co.kr 신문에서 가장 압축적인 표현양식은 뭘까? 스트레이트 기사나 사설은 저널리즘이 만들어낸 압축적 표현의 결정체다. 특히 스트레이트 기사는 신문이라는 매체의 발달사와 궤를 같이한다. ‘사실’(만)을 가장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재현하기 위한, 좀 더 정확하게는 독자와 사회가 그렇게 믿도록 신화화한 ‘특화된’ 형식이자, 신문 기사의 가장 ‘보편적’ 형식이다. 만평 또한 매우 압축적이다. 손바닥보다 좁은 지면 위에 당일의 핵심의제를 ‘촌철살인’한다. 다만 스트레이트 기사가 다분히 공학적 결과물이라면 만평은 작가의 직관과 창의력에 따라 결과가 판이해지는 창작물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스트레이트 기사나 ..
지율, 그 잊혀진 이름을 다시 만났다 [기획] 발견 2008 “내가 만난 2008년의 무엇” ⑨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지율’은 잊혀진 이름이다. 아니, 어느 쪽에서는 애써 잊으려 하고, 그 반대쪽에서는 고약한 관형어를 끌어 붙여 끝없이 상기시키려 하는 이름이다. 날수로 350일이 넘는 다섯 번의 단식을 이어가면서, 그보다 우뚝했던 목소리들은 부채감을 뒤로하고 모두 스러졌고, 그보다 날선 목소리들은 정형화된 기계음을 기세 높게 되풀이하고 있다. 천성산은 집단적 기억에서 멀어졌고, 굴착기 소리는 산자락에서만 더욱 요란할 뿐 세상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는다. 숫자와 화폐 단위로 표기된 공사 지연 손실액만이 유일한 기호로, 때만 되면 포장을 바꿔 다시 전시되는 계절상품처럼, 언론과 정치권 등에서 유통기한 없이 ..
지율스님 “생명의 화두는 결코 놓을 수는 없다” [인터뷰] 79일째 단식 지율 스님…절망을 딛고 ‘초록의 공명’을 울린다 2005-01-13 새해 들어 몇몇 언론들은 “지율 스님이 ‘신변정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외부와 연락도 아주 끊었다고 전했다. 80일 가까운 단식이라는 물리적 현실은 홑따옴표까지 붙은 ‘신변정리’의 기호에서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읽어내게 했다. 그의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물어도 “연락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답만 돌아왔다. 스님은 이 무심하고 야박한 세상에 마지막으로 무거운 부채의식을 안기고 그렇게 떠나려는 걸까.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는 조급함말고 달리 작정은 없었다. ‘천성산’ 홈페이지에 스님 앞으로 편지를 썼다. 꼭 뵙고 싶노라고. 두어 시간 뒤 스님이 전화를 걸어왔다. 찾아와도 좋다고 했다. 그의 선선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