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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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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특혜’라는 외설 김현아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 후보자가 자기 소유 부동산 네 채를 두고 “시대적 특혜”라고 했다기에, 그와 나의 시간대가 얼마나 겹칠까 문득 궁금해졌다. 교집합이 꽤나 컸다. 공범 의식이 주입된 탓인지, 쑥덕공론 한번 못 해보고 그의 사퇴 소식을 들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신파극 속 ‘행인 1’이었다면, 무려 시대를 호명한 김 후보자는 대하드라마의 히로인이었다. 비슷한 ‘시대적 특혜’를 누렸을 여권 정치인들을 비꼬았던 것이 ‘내로남불’의 덫에 걸려 드라마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지만, 시대를 볼모 삼은 그의 대사는 분명 잔망스러울 만치 영리했다. 김 후보자는 퇴장했으나, 그의 대사..
오늘의 적, 내일의 적 대통령 선거 얘기를 하지 않는 게 하는 것보다 어려운 시절이 돌아왔다. 자신이 찍은 후보가 당선되는 걸 본 적이 없는 이라면 성가시거나 소외된 시간으로 들어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냉소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육박해오는 시간일 수 있다. 후보와 그 진영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 선거에 졌다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후보는 여태 한 명도 없었다. 다들 국민의 현명한 선택 앞에 고개 숙이고, 서둘러 앞날을 다짐했을 뿐이다. 2012년 12월19일, 대선 결과가 나오기 무섭게 노동자 세 명이 목숨을 끊었다. 모두 장기 투쟁 사업장 소속이었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게 아니라 천 길 벼랑 끝이 발밑에서 무너진 ‘추락사’였다. 애초 그들 앞에 놓인 ‘죽느냐 죽..
‘내 집’인가 ‘내집’인가 ‘즐거운 나의 집’과 달리 ‘내 집 마련’이라고 할 때는 ‘내’와 ‘집’을 붙여 쓰는 관행이 있다. 심지어 ‘내집마련’으로 복합명사처럼 쓰기도 한다. 집에 대한 집단적인 소유 욕망이 띄어쓰기 맞춤법을 넘어선 결과일 것이다. ‘빈 집’ 대신 ‘빈집’이 처음부터 맞춤법은 아니었을 테고, ‘짜장면’이 어느 날 ‘자장면’과 동렬에 올랐듯이, ‘내집’도 머잖아 표준어로 등재되지 않을까. ‘내 집’은 사용 개념이고, ‘내집’은 소유 개념이라는 국립국어원의 뜻풀이와 함께. 그러나 사용 개념으로서의 집이 어느덧 사멸하고 나면, ‘내 집’도 결국 사어가 될 것이다. 조삼모사의 정부 주택 정책을 겨냥한 최신 버전의 구호는 “실수요자 외면 말라!”다. 여기서 ‘실수요’가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과 ‘마용성’ 등에 집중된다는 ..
청와대 안의 트럼프들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민주’와 ‘공화’는 하나의 명사로 묶여 있지만, 가치체계는 사뭇 다르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 때 시민들이 광장에서 외친 “국민의 명령이다”가 민주주의의 가치에 기초했다면, “이게 나라냐”는 공화주의에 기초했다. 대통령 비선 실세가 사사로이 공적 영역을 전유한 데 대한 탄식이 “이게 나라냐”다. 민주주의는 주권재민의 원리이고, 공화주의는 공공성의 원리다. 전자는 개별 국민의 권리 신장을, 후자는 공동선과 조화, 평등을 지향한다. 둘이 균형을 이루며 서로 보완하도록 설계된 게 민주공화국이다. 그러나 실현은 쉽지 않다. 더구나 공화주의는 우리에게 경험적으로 익숙지 않고, 개념적으로도 꽤나 복잡하다. 프랑스의 ‘부르키니’(무슬림 여성 전용 전신 수영복) 착용..
부동산과 에어컨 일산 신도시 곁에 별책부록처럼 조성된 단출한 주거지역에서 18년째 살고 있다. 이사 온 날 밤 달디 달았던 공기와 형형했던 별빛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처음엔 직장 동료들이 제법 많이 살았는데 일찌감치 떠나고, 지금은 두어 집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이 간 곳은 예외 없이 서울의 학군 좋은 지역이었다. 나는 전세 계약이 끝나도 같은 단지 안에서만 옮겨 다녔다. 평수가 가장 작은 단지여서 보증금이 쌌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단지 곳곳에 우거진 나무들에도 미련이 컸다. 이제 나도 떠날 때가 되었다. 이곳만큼은 부동산 광풍의 무풍지대라 여겼는데, 올 들어 집값이며 전셋값이며 한두 달 만에 1천만 원씩 뛰고 있다. 이사 갈 곳을 찾아 열심히 인터넷을 뒤진다. 지금 사는 데보다 더 외진 지역들이다. 그럼에도 더 ..
백용호 국세청장 후보자의 낯익은 변명 책 보관하려고 부동산 투기?…양주만 마시면 독해서 폭탄주! 공자는 “남자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야 한다”고 했다. 여자는 몇 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지 말하지 않은 것은 그가 여성을 지식인 사회의 구성원에서 배제했다는 뜻이다. 그런 공자가 아직 살아서 백용호 국세청장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 답변을 들었다면 이런 어록을 남길 법하다. 자왈, “용호야, 그대는 싸나이 중의 싸나이로다.” 백 후보자는 그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한 국회의원의 추궁에 “많은 책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그는 아파트 두 채와 오피스텔 두 채, 대지 한 곳, 합이 다섯인 부동산 부자다. 그는 겨우 다섯 수레가 아니라 너끈히 집 너댓 채다. 대학교수 출신이라면 모름지기 그 정도는 돼야 하는 것이다. 권력의 주변..
‘난쏘공’, 그 운명적 스테디셀러 세입자를 끝없이 희생시키는 언론의 기우뚱한 객관식 문제 용산참사가 터진 지 한 달이 넘도록 책임 공방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철거민 세입자들의 방화냐, 경찰특공대의 진압작전이냐가 쟁점이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같은 차원에 놓고 선택을 요구할 수 있는 물음의 구조가 아니었다. 설령 철거민 세입자들이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났다고 해도 경찰의 무리한 강경진압과 인명구조 외면의 책임이 사라지기는커녕 줄어들지도 않는다. 언론은 흔히 선택형 물음을 통해 의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물음의 구조가 잘못된 경우가 적지 않고, 그런 물음일수록 주관적 의도가 내포돼 있기 십상이다. ‘박대박’ 코너를 떠올려 보라. “무분별한 성형과 장기 매매를 일삼는 이 인어,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1번을, 아니다, 지금은 칠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