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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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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장이 필요한 사람들 ‘조국 정국’을 대분류하면 절반은 ‘표창장 정국’이다. 논문 교신저자나 연구소 인턴 문제는 그 하위범주로 분류하면 된다. 핵심은 ‘조작’ 여부다. 대한민국 정치권과 검찰, 언론은 물론 온 국민까지 사생결단으로 이 문제에 매달려왔지만, 그 와중에 난 한갓지게 ‘표창장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고맙게도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조국 장관 낙마 표창장’으로 고민을 덜어줬다. 표창장이란 본디 부조리거나, 역설이거나, 한바탕 소극이었다. 표창장이 폭포수처럼 쏟아질 때가 더러 있다. 4대강 사업 유공자로 표창장을 받은 이는 1152명이다. 수자원공사, 국토부, 환경부, 국방부 등에서 녹봉을 먹는 이가 가장 많다. 강을 파헤치고 막으면 물이 맑아진다고 했던 학자들이 뒤를 잇는다. 영주댐 사업을 담합해 처벌받은..
토건족의 숙주, 4대강 보와 영주댐 1987년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새만금 공약’을 발표했을 때, 농지개량조합(현 한국농어촌공사) 사람들은 “100년 먹거리가 생겼다”며 환호작약했다. 그들의 예지력은 얼마 전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새만금 국제공항 사업으로 거듭 증명됐다. 갯벌 메운 땅을 어디에 쓸지 30년 넘게 정하지 못한 채 돈이 계속 들어가고 있지만, 덕분에 누군가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는다. 4대강 사업도 “완공 없는 사업이 될 것”이라 했다.(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 예상대로 2012년 준공 이후 수질은 나빠지고, 인적 없는 300여개 수변공원은 잡초밭으로 변했다. 보 안전성도 논란이 됐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돈 나올 구멍이 끝없이 열리는 셈이다. 그 돈이 흘러드는 곳은 애초 4대강 사업을 벌였던 이들의 주머니다. 그들이 사업..
천문학적 복지 논쟁의 깨알 같은 진실 복지 논쟁의 익숙한 구도는 ‘여-야’ 또는 ‘보수-진보’의 대립이다. 그러나 최근의 대립 양상이 ‘정부-여·야’의 구도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먼저 공세에 나선 건 기획재정부였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총선 복지 공약들을 따져보니 연간 43조~67조원이 들어가고, 5년간 최대 340조원 규모로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에 두 정당은 사실상 공동전선을 폈다. 나라 예산은 정치적 의지가 반영되는 것이라는 원론적 주장에 이어, 민생을 파탄시킨 현 정부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는 정치 공세가 더해졌다. 여당 소속 서울시장의 사퇴로까지 이어진 지난해 사태와 견주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새누리당은 극적인 변신을 꾀함으로써 복지가 오늘의 대세임을 방증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복지 확대 과정을..
그 섬, 4대강의 삼류 연극 무대 “저건 나비다!” 일행 중 누군가 내뱉은 말은 서술보다 탄식에 가까웠다. “어디 어디?” 사람들의 눈길이 손끝을 좇아 가파른 산허리와 물길을 허공으로 가로질렀다. 곧 “큭!” 하고 급히 끝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허!” 하며 꼬리를 끄는 소리도 들렸다. 아닌 게 아니라 거기 나비가 한 마리 있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익룡보다 터무니없이 큰 나비가, 그나마 익룡 화석보다 훨씬 볼품도 생기도 없게, 무려 황토 바닥에 납작 눌린 형상으로, 적나라하게. 경북 상주시 경천대와 (4대강 사업으로 들어선) 상주보 사이 낙동강에는 너른 습지를 품은 하중도(河中島)가 있었다. 이 문장의 시제가 과거형인 것은 섬 때문이 아니라 습지 때문이다. 섬은 남았고, 습지는 사라졌다. 상주 사람들은 이 섬을 ‘오리섬’이라..
정치적 인재(人災), 정치적 의인(義人) 여름엔 어김없이 태풍이 찾아오고, 그때마다 모든 방송사는 전국의 중계차를 총동원해 불안감을 극도화한다. 물론 재난에 대비한 경각심에 지나침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설령 별 탈 없이 태풍이 빠져나간다 해도 방송사들은 한동안 생중계를 이어가며 입맛을 다신다. 재해는 언론에게 둘도 없는 콘텐츠 소스인 것이다. 그다음은 재해 원인분석인데, 이 단계에서 온 국민이 다 아는 스테레오타입이 등장한다. “천재가 아니라 인재인 것으로 드러났다.” 자연재해는 천재와 인재가 겹쳐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줄일 수만 있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재해 예방에 있어서 자연의 순리를 어디까지 거스르고 맞서야 하는지는 한 번 더 생각해볼 문제다. 공학보다 생태학이 훌륭한 재해대..
내성천에 들어 산 것들을 만나다 사람들은 무릎 높이까지 바지를 걷어 올렸다. 며칠에 걸친 총강우량은 80~100mm였다고, 사흘 전 기상청은 발표했다. 봄비였다. 남한강 이포보 제방 200m를 쓸어가고, 낙동강 취수장 가물막이를 무너뜨려 56만2천 명이 마실 물을 삼켜버린 비는 이곳에도 똑같이 내렸다. 키가 큰 사람도 키가 작은 사람도, 다만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무릎은 물의 물리적 깊이가 아니라 사람의 심리적 깊이 같아 보였다. 바로 옆에 수달이 누고 간 똥이 보였다. 큰물이 쓸고 간 뒤에 남긴 하루이틀 사이의 흔적일 터였다. 그 똥이 일러주는 건 이곳 수달의 넉넉한 개체 수와 부지런한 품성이었다. 발원지에서 45km 내려온 내성천 상류 물가 모래밭에서 도강은 시작됐다. 산에는 연록으로 봄단풍이 스며 싱그러웠다. 경북 영주시 평은면..
‘녹색’이 만들어낸 ‘녹색의 사막’ ‘훅’에 쓴 글입니다. 1. 환유와 장자몽 직유나 은유가 실체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철저한 이원론이라면, 환유는 오히려 일원론에 가깝다. 직유와 은유는 이들의 관계에 우와 열의 위상차를 부여하지만, 환유에서 둘은 동격이다. 정신분석학이 한갓 은유의 서사라면 간밤의 생생한 꿈은 내 현실과 아무 관계도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지몽은 뭐란 말인가. 굳이 욕망과 억압의 관계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꿈과 현실은 투사이거나 조응으로서 환유다. 환유는 비유법을 넘어서, 장자몽처럼 서로 뒤챈다. 얼마 전 나는 그것을 낙동강에서 새삼 깨달았다. 2. 녹색이 녹색을 죽이는 이치 지율 스님은 먼 곳을 보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스님의 손끝이 멀리 뉘엿해지는 햇살 아래 강을 건너갔다. 방천 뒤로 펼쳐진 수풀은 조신했지..
프로 레슬링으로 본 오늘 한국 5월29일치 ‘왜냐면’에 실린 글이다. 쪽에 꼭 실어달라고 몇 번이고 신신당부를 해서, 겨우 실렸다. 살면서 매체에 글 실어달라고 청탁해보기는 처음이다. 본디 저널적 글은 선도가 생명인데, 시간을 오래 끌어 물이 갔다. 자존심도 상하고 민망하기도 했지만, 어느 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했다. 신문에서는 군데군데 서너 문장이 잘렸다. 분량이 넘쳤나 보다. 아프다. 나도 늘 다른 사람 글을 자르면서 필자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해왔는데, 아픔을 느끼는 인간의 몸은 모두 개별적이어서, 그 간극을 넘어설 수 없나 보다. 아래 글은 신문에서 잘린 대목까지 다 담은 원문이다. 얼마 전 지율 스님이 전화를 걸어오셨다. 한숨을 폭 내쉬신다. 그날 에 실린 칼럼(‘아니면 말고’ 선동, 3진아웃 시켜야)을 보시고,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