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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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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밀려오는데 해일 줍냐 내가 꼽은 올해의 말은 “조개 밀려오는데 해일이나 줍고 있냐”다. 해가 바뀌려면 며칠 남았지만 그 사이에 경쟁상대가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 말의 첫 발화자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사실 알 필요가 없다. 문장 구성 자체에 카피레프트의 속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작품을 간단히 조롱해버리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뱅크시의 작품에 저작권을 묻지 않는 이치와 같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격투기 기술의 짜릿함을 거저 즐기기만 하면 그만이다.“해일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 있냐.” 처음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군지는 잘 알려져 있다. 국회의원과 장관을 지냈고, 지금은 작가와 방송인으로 맹활약 중인 50대 엘리트 남성이 저작권자다. 대통령 선거 전에 자신이 이끌던 정당에서 일어난 성폭..
3·1운동 보도와 촛불 보도는 똑같았다 4·19, 6·3, 부마항쟁, 5·18, 6·10… 90년 동안 되풀이된 ‘폭도’ ‘난동꾼’ 몰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집회·시위와 관련한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짚는 보고서 프로젝트를 맡아 일주일 넘게 씨름을 했다. 내 호기심은 타임머신을 타고 1919년으로 날아갔다.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집회·시위를 당시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지 궁금했다. 이완용은 그해 3월8일자 에 쓴 글 ‘황당한 유언(流言)에 미혹치 말라’에서 조선의 독립 가능성은 없으니 선동에 속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4·19혁명, 6·3사태,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나는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한 변곡점이 된 주요 집회·시위 사건 보도를 뒤좇아가봤다. 2003년 미선·효순 촛불집회와 2004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
PD수첩은 ‘언어 전쟁’이다 제 블로그에 들어와 본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군요. 공과 사의 균형이 무너지고, 하루하루 정신없는 나날입니다. 무엇보다 글 쓸 시간이, 그럴 만한 마음의 평정을 찾을 겨를이 없습니다. 얼마 전 한 영화잡지에 발표했던 글을 올립니다. 제가 지은 집에 스스로 찾아올 기회가 많아지길, 그리하여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여유를 되찾기를 바라고, 벼릅니다. 휴~ PD수첩은 ‘언어 전쟁’이다 15년 동안 이름 석 자 뒤에 ‘기자’라는 호칭을 달고 살면서, 난 언론인이 1인분의 용량을 넘어서는 직업인이라고 생각해왔다. 나를 포함해 적지 않은 언론인들이 자신의 능력과 인격의 용량보다 큰 ‘사역’을 감당하고 산다. 비슷한 부류의 직업인으로 종교인, 교육자 등을 꼽을 만한데, 지식노동을 한다는 것 말고도 이들에겐 ..
“정권과 경영진 덕에 싸울 이유를 알았다” [인터뷰]PD수첩 ‘광우병 쇠고기’ 편 제작한 김보슬 PD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벌써 넉 달이 지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에 합의하고 파안대소한 지도, 미국산 쇠고기가 절대 안전하다는 정부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지도. “벌써 그렇게 됐어요?” MBC 김보슬 PD는 “넉 달이 지났다”는 얘기에 화들짝 놀랐다. 넉 달 새 세상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넉 달 전과 넉 달 뒤는 완전한 단절이었고, 시간관념은 증발해버렸다. 어제 해임된 KBS 사장은 오늘 검찰에 체포되고, KBS 사장이 체포된 날 MBC 경영진은 PD수첩 사과방송을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8월12일 저녁, 김 PD는 5년째 다닌 회사 1층 ..
'건국'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건국절' 개명 시도를 앞두고 경향신문이 돋보이는 이유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태초에 국가가 있지 않았다. 국가가 있기 전에 국민 될 사람이 먼저 있었다. ‘민주주의 공화국’이란 바로 그 사람들이 스스로 국가를 구성한 주인(민주주의)이며, 국가는 그 사람들이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만든 협의체(공화국)임을 명시한 개념이다. 촛불집회 주제가인 는 이같은 국가의 설립 과정과 의미를 법전 밖 거리에서 새삼 상기시킨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외치는 촛불시민을 짓밟는 공권력의 행위는 미친개가 밥 주는 주인을 무는 꼴과 같다. 건국절 개명 시도, 촛불 계승으로 비칠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광복절’을 ‘건국절’로 개명하겠다고 한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이번 기..
PD수첩 판결서 2002 월드컵을 떠올리다 예상기사 빗나가면 허위보도?…신문들 아전인수가 허위보도!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올림픽이 며칠 안 남았다고 하니 스포츠 얘기로 시작해 보자. 2002년 한·일 월드컵 개막전 프랑스 대 세네갈 경기는 1-0, 세네갈의 승리로 끝났다. 4년 전 우승팀이자 피파 순위 1위 팀이 월드컵 첫 출전팀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렇다면 개막전을 앞두고 프랑스의 낙승을 예상한 언론 보도는 ‘허위’인가? 나는 이 질문을 지금 서울남부지법 민사15부(김성곤 부장판사)에 던지고 있다. MBC 이 미국인 아레사 빈슨의 사망 원인을 인간광우병(vCJD)으로 추정한 것에 대해 ‘허위 보도’라고 판결한 그 재판부 말이다. (재판부는 “이미 두 차례 후속보도를 내보냈으므로 정정보도 청구를 기각했을 뿐,..
청와대와 조중동만 고립된 대한민국 [5일 밤 9시] 쉰아홉번째 촛불문화제 5제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1. 시민이 만든 광장이 대통령이 만든 광장을 삼키다 쉰아홉번째 촛불문화제가 열린 5일 오후, 서울 태평로 대한문 앞 무대차를 중심으로 시민들은 부채살처럼 거리를 점유해 나갔다. 시민들은 청와대 방향을 등지고, 조선일보사 앞을 대각선으로 차단한 전경버스 차벽 앞까지 태평로를 가득 채우며 종심을 길게 이어갔다. 오후 6시가 되자 중고생, 농민, 종교인을 비롯해 이 나라에서 진짜 시민권을 가져 마땅한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워 광장을 만들었다. 어림잡아 20만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불도저로 만든 시청앞 서울광장은 시민들이 스스로 만든 거대한 광장의 일부로 빨려들어갔다. 2. 버스차벽 뒤로 ..
버거킹 보증서 흔들며 과학을 외치다! [분석]동아일보 4일치 1면 기사의 ‘주술적 과학주의’를 비판함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 올해 고인이 된 김병관 전 동아일보 명예회장은 지난 2001년 부인 안경희씨를 먼저 떠나보냈다. 하필 당국의 고강도 세무조사로 거액의 탈루 사실이 드러나 신문도 집안도 모두 큰 위기에 놓여 있을 때였다. 안씨는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그해에는 신경쇠약 증세도 심했다고 했다. 다음날 동아일보 지면은 안씨의 죽음을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차분하게 다뤘다. 흥분한 쪽은 이웃 조선일보였다. ‘권력에 의한 정치적 타살’이라는 거였다. 동아일보의 감각은 안씨의 죽음 자체보다 조선일보의 자극에 훨씬 민감한 듯 보였다. 그 다음날 느닷없이 1면 통사설(상자 전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