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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등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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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문법으로 본 카이스트 사태 어느 날 어린 딸아이가 TV를 보다 말고 툭 내뱉는 말이 걸작이었다. “드라마에서 가장 형편없는 죽음은 교통사고로 죽는 것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죽이고 끝낸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 이유 없는 죽음은 아니다. 드라마를 끝맺어야 하는 제작자가 개연성에 기대어 고민을 간단히 해결하려는, 이유 있는 죽음이다. 드라마뿐이겠는가. 현실 세계에서도 다른 누군가에 의한, 누군가를 위한 개연적 죽음은 숱하다. 최근 카이스트 학생들이 잇달아 자살을 하고, 교수 한 사람도 스스로 목숨을 끊자 언론들이 대서특필하고 나섰다. 언론은 흔히 정치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죽음에 등급을 매긴다. 보도할 것인가 말 것인가, 어느 정도 크기로 보도할 것인가…. 입시 스트레스나 좌절로 목숨을 끊는 고등학생이 한 해 줄잡아 100명이 넘지만,..
‘입학사정관제’로 본 교육의 정치학 명분의 뒤안길에 있는 적나라한 이기적 게임의 법칙 교육문제만큼은 정치논리를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진보-보수 또는 서민-기득권층을 동시에 만족시킨 교육정책 사례가 없었던 우리 현대사 앞에서 머쓱하다. 교육문제는 정작 가장 정치적인 영역 가운데 하나다. 공공선의 문제이기에 앞서 미래 자원에 대한 분배의 문제이기에 그렇다. 한국사회의 교육 갈등이 유별난 것도 교육이 자원 분배의 핵심변수로 작동해온 여태까지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진보와 보수가 그 ‘과거’ 기억을 전혀 다르게 재구성하기에 ‘미래’의 분배 규범을 놓고 ‘현재’의 교육정책을 다투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최근 언론 보도는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었던 정책 분야 전반에서 극단적 찬반 대립이..
'강남 신화'에 바치는 '일제고사' 감상법 일제고사 포기 못하는 대한민국 교육의 진짜 명제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가 된다는 건 거대하고 획일적인 집단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걸 뜻한다. 미국에 살든 유럽에 살든, 금융가든 날품팔이든, 유대인이면 누구나 하나의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고 사는 것처럼, 이 나라 학부모들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도농격차를 뛰어넘는 또하나의 ‘디아스포라’다. 유대인이 수천년 동안 차별의 상징이었듯이, 이 나라 학부모들이 갑과 을의 관계에서 대체로 ‘을’인 것도 닮았다면 닮았다. 속된 말로 학부모인 나는,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나라에서 까라면 군말 없이 까야 한다. 내 아이들도 그 말 많고 탈 많은 학업성취도 평가, 일명 일제고사를 봐야 했다. 나 또한 ‘본의 아니게’ 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새로 진학해야 하는 학교, ..
고려대의 新봉건국가 프로젝트 ‘고교등급제’ 고소영·강부자 신분제를 위한 그들만의 순결한 입시제도 고려대가 고교등급제를 실시했다는 보도는 ‘진부한 새소식’이다. 지난 2004년, 고려대는 2005학년도 수시전형에서 ‘음성적인 노골성’을 드러내다 긴꼬리가 잡힌 ‘전과’가 있다. 그때는 비슷한 죄질의 대학들이 몇 군데 더 있었다. 모두 서울 소재의 내로라하는 사립대학들이었다. 지금이 그때와 다른 건 고려대의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그래서 물음의 맥락이 변했다는 것 정도다. “왜 고교등급제인가”에서 “왜 고려대인가”로. 왜 고교등급제인가, 그리고 왜 고려대인가? ‘학문’은 ‘양심’과 불가분의 관계다. 서로에 의존해 각자를 완성한다. 양심 없는 학문은 곡학이며, 학문 없는 양심은 오류 가능성에 대한 무방비다. 대학이 ‘진리의 전당’이라는 권위를..
고교등급제, 계급과 교육의 불순한 야합 [분석] 한국사회에서 고교등급제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은? * 한겨레에서 일할 때 고교등급제와 관련해 썼던 글입니다. 고교등급제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기에, 옛글을 찾아 띄워 봅니다. 당시 한겨레는 탐사보도를 통해 대학들이 음성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고교등급제 실태를 폭로했습니다. 그 문제가 검찰 수사까지 이어진 터라, 고교등급제에 대한 대학당국의 불온한 욕망이 꺾일 것이라 기대했었습니다. 순진했던 거죠. 저들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교육모리배들입니다. 연세·이화·고려대 등 3개 대학이 고교등급제를 시행해왔다는 교육부 실태조사가 발표된 뒤, 한국사회가 ’고교 등급제’ 후폭풍에 휩싸여 있다. 고교등급제를 둘러싼 논의가 확산되면서 고교등급제는 일부 대학의 문제를 넘어, 지역간- 사회계층간 갈등양상으로 옮아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