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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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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애도가 본질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나고 처음 만든 에 썼던 기사다. 1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참사 이후의 시간은 그때 상상할 수 있었던 가장 나쁜 시나리오가 하나하나 현실화된 시간이었다. 그래서 세월호는 현재진행형의 참사다.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대표 인터뷰 철학자가 본 세월호 참사 애도 [나·들 2014.05 제19호] 세월호 참사는 ‘죄 없는 아이들의 희생’을 넘어 ‘가장 약한 존재의 침몰’이다. 철학아카데미 대표 김진영 선생은 애도의 정의를 바로잡고 죽은 자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그들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어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한겨레 박승화 이 인터뷰의 모티프는 영화 (2007)이다. 유괴 뒤 살해된 어린 아들을 화장장 불길 속으로 떠나보내는 신애는 대성통곡하는 아이 ..
그 섬, 4대강의 삼류 연극 무대 “저건 나비다!” 일행 중 누군가 내뱉은 말은 서술보다 탄식에 가까웠다. “어디 어디?” 사람들의 눈길이 손끝을 좇아 가파른 산허리와 물길을 허공으로 가로질렀다. 곧 “큭!” 하고 급히 끝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 “허!” 하며 꼬리를 끄는 소리도 들렸다. 아닌 게 아니라 거기 나비가 한 마리 있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익룡보다 터무니없이 큰 나비가, 그나마 익룡 화석보다 훨씬 볼품도 생기도 없게, 무려 황토 바닥에 납작 눌린 형상으로, 적나라하게. 경북 상주시 경천대와 (4대강 사업으로 들어선) 상주보 사이 낙동강에는 너른 습지를 품은 하중도(河中島)가 있었다. 이 문장의 시제가 과거형인 것은 섬 때문이 아니라 습지 때문이다. 섬은 남았고, 습지는 사라졌다. 상주 사람들은 이 섬을 ‘오리섬’이라..
그 버스의 행선지는 ‘희망’이다 * 이 글은 6월 12~13일 1차 희망의 버스를 타고 다녀온 뒤에 썼으며, 7월호(7월 9일 발행)에 실렸습니다. 7월호가 발행되던 날, 다시 1박2일 일정으로 2차 희망의 버스를 탔습니다. 부산 영도 일대의 스카이라인을 그리는 일은 이곳 부둣가를 따라 빽빽이 들어선 타워크레인들의 꼭짓점을 잇는 일이다. 멀리 지나치며 볼 때, 그 괴이한 철골 구조물들은 땅에 버티고 선 게 아니라 스카이라인에 주렁주렁 매달린 듯 보인다. 시인 기형도풍(‘안개’·1985)으로 말하면, 타워크레인은 이 도시의 ‘성역’이자 ‘명물’이다. 이곳에 처음 온 이들은 누구나 얼마 동안은 경계심을 늦추는 법 없이 낯선 크레인의 숲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라, 사람들은 쉽게 크레인과 식구가 되어, 그 사이를 ..
내성천에 들어 산 것들을 만나다 사람들은 무릎 높이까지 바지를 걷어 올렸다. 며칠에 걸친 총강우량은 80~100mm였다고, 사흘 전 기상청은 발표했다. 봄비였다. 남한강 이포보 제방 200m를 쓸어가고, 낙동강 취수장 가물막이를 무너뜨려 56만2천 명이 마실 물을 삼켜버린 비는 이곳에도 똑같이 내렸다. 키가 큰 사람도 키가 작은 사람도, 다만 무릎까지 걷어 올렸다. 무릎은 물의 물리적 깊이가 아니라 사람의 심리적 깊이 같아 보였다. 바로 옆에 수달이 누고 간 똥이 보였다. 큰물이 쓸고 간 뒤에 남긴 하루이틀 사이의 흔적일 터였다. 그 똥이 일러주는 건 이곳 수달의 넉넉한 개체 수와 부지런한 품성이었다. 발원지에서 45km 내려온 내성천 상류 물가 모래밭에서 도강은 시작됐다. 산에는 연록으로 봄단풍이 스며 싱그러웠다. 경북 영주시 평은면..
언론의 자유에 침을 뱉어라 한 달 반 만에 새로 올린 글, 그마저 블로그를 위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2월호에 쓴 글입니다. 먼지를 툭툭 털며, 포스팅합니다. (1995)에서 윌리엄 월레스(멜 깁슨)의 마지막 대사 “프리덤”은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구성한다. 영국 왕의 압제에 맞서 싸우다 최후를 맞는 이의 미학적 비장함은 단연 압권이다. 그러나 맥락은 스타카토처럼 튄다. 13세기, 스코틀랜드 독립투쟁을 이끌던 이의 마지막 발화가 과연 ‘자유’였을까. 이를테면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투사가 비운의 죽음을 맞는 순간 했던 말은 ‘자유’가 아니라 ‘대한독립 만세’였을 것이다. 또, 백인들의 잔인한 도륙 앞에서 아메리카 인디언이 ‘자유’를 외쳤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설령 월레스가 ‘자유’라고 외쳤다 해도, 그것은 ‘프리덤’(불..
선거에서 월드컵에게로 [6월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읽기] 6월호를 6월 1일 새벽 5시에 마감했다. 해가 길어졌다. 어제 새벽에는 동트는 것을 보고 퇴근했는데, 오늘 새벽엔 동트는 것을 보며 숙직실로 간다. 아래는 6월호 소개글이다. 독자들이여, 많이 사봐달라. 지속가능한 밤샘을 위해! 6월은 4년에 한 번 꼴로 월드컵의 달이 된다. 축구공 하나를 놓고 푸른 행성(머잖아 화석이 될지 모를 이름이지만) 전체가 한 달 내내 열병을 앓는 풍경을 우주에서 바라본다면, 그 우주인이 메시나 호날두라도, 무척 낯설어 할 것이다. 그렇다고 월드컵이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는 건 부질없어 보인다. 축구는 괜찮지만 월드컵은 아니다라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사자는 괜찮지만 세렝게티에서 누를 사냥하는 사자떼는 나쁘다고 말할 수 없듯이. 축제는, 강..
아인슈타인이 나로호 발사를 본다면 [안영춘/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장] 아인슈타인은 평화주의자였다. 국제평화를 이루기 위해 각 국가들로부터 주권 일부를 양도받은 강력한 국제기구를 창설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러나 이 평화주의자의 물리학 방정식은 핵폭탄의 이론적 원리가 됐다. 그 스스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핵폭탄의 원리를 설명하며 개발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6년 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핵폭탄으로 20여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의 삶은 과학(자)의 야누스적 숙명을 보여준다.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만, 인간은 과학기술로 선/악의 가치를 구현한다. 나로호 발사가 사실상 실패했다. 한국 언론들은 일제히 우주과학기술 강국의 꿈이 유예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다시금 ‘전의’를 불태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쌍용차 보도에 스트레이트가 넘치는 이유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에 언론이 일제히 갖다 붙인 수식은 ‘극적 타결’이었다. 상황이 급박했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그동안 보도를 보면 언론은 ‘방조’라는 역설적 방식으로 사태에 개입해 왔다. (사태가 악화될 대로 악화되고 나서야 겨우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런 언론이 사태 해결에 감격해하는 건 아이러니다. 쌍용차 사태 보도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압도적인 스트레이트 기사 비율이었다. 공공미디어연구소가 8월 11일 발표한 ‘주간 정책 브리핑’을 보면, 지상파 3사의 쌍용차 사태 관련 보도에서 노사 주장을 단순 전달하거나 노-사, 공권력 간의 물리적 충돌을 묘사한 스트레이트 기사 비중이 64%에 이르렀다. 갈등 보도가 스트레이트 기사로 쏠리는 현상은 고질적이다. 지난해 말 한국언론재단이 펴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