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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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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 청소, 그 특수함에 대하여 -5월8일, 참나무씨의 어떤 하루 가사노동에서의 평등은 다음 두 가지가 달성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성별분업의 폐지. 둘째, 일의 합리적인 분담. 성별분업이란 남성이 해야 할 일과 여성이 해야 할 일을 구분해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남성이 해서는 안 될 일과 여성이 해서는 안 될 일을 금기로서 못 박은 것이다. 여기에 노동의 장소가 가부장제의 집 내부로 옮겨지면 다시 남성이 해서는 안 될 일로만 국한되는데, 그것은 애초 가사노동이 여성만의 ‘의무’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여성은 뭐든지 해야 하는 반면, 남성은 예외적으로 해주는 것이고, 내키지 않으면 그마저 안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별분업의 폐지는 (성)평등한 가사노동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성별분업이 폐지돼도..
학벌 불능 시대의 역설 내가 일하는 신문사는 창간 초기에 서울대 출신 비율이 절반을 넘어, 대한민국 어느 조직보다 쏠림 현상이 심했다. 출신대학을 보지 않고 오직 필기시험으로만 뽑은 결과라는 것이 심각한 아이러니였다. 그러다 여러 종류의 글쓰기와 토론, 면접 등을 입사 전형에 도입한 뒤로 신입기자들의 서울대 출신 비율은 차츰 낮아졌고, 창간 15년이 지날 즈음에는 N분의 1이나 다름없게 되었다.서울대 출신 비율이 줄어든 것을 두고, 어느 선배가 술자리에서 내뱉은 짙은 탄식이 기억난다. “이렇게 수준이 떨어지니 앞으로 큰일이다.” 내가 그 대학 출신이 아니라는 걸 뻔히 알고도 전혀 괘념치 않은 건 서울대 독점은 조직의 수준과 정비례한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벌 기득권자들이 자원독점에 대한 자기합리화마저 해체하려면 ..
아빠를‘아빠’라 부르지 말아다오~ 나와 딸들 사이에 오가는 언어가 범상치 않음을 알아챈 건 3년 전 이맘때였다. 소설 쓰는 손아람, 둘쨋딸 신소2(신비의 소녀2)와 셋이서 당일치기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손아람이 말했다. “형네는 참 특이해요.” 식구끼리는 좀체 쓰지 않는 “고마워”와 “미안해”를 일삼아 쓰더라는 거였다. 우리가 그랬던가.그렇다고 나와 두 딸이 유별나게 내외하는 처지는 아니다. ‘불가근 불가원’이라면 모를까. 신소1(큰딸), 신소2는 나와 합의를 거쳐 얼마 전부터 나를 이름으로 부른다. “아빠! 아차, 영춘!” 아직은 서툴지만, 곧 입에 붙으리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는 이 의지적인 행동의 뿌리는 다름 아닌 식구끼리도 서로 민감하게 배려하는 몸에 밴 감수성일 테니까. 그녀들이 “영춘, 미안!” “영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