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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신문사는 공장입니다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116-25 한겨레신문사 사옥.

언제부턴가 나는 서울시 마포구 공덕동 116-25번지를 “공장”이라 부른다. 고급스러운 커피전문점이 ‘팩토리’나 ‘공작소’ 같은 상호를 내걸며 제조업과 노동을 낭만화하는 행태와 유사하게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은 분명 공장이다. 신문을 찍는 거대한 윤전기가 있고, 8층짜리 신문사 건물은 1, 2층의 윤전실을 토대 삼아 그 위에 서 있다. 무엇보다 그 윤전기를 애써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 밤낮으로 돌리는 동료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과 더불어 이곳 구성원 대부분은 직군과 상관없이 민주노총 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 조합원이다. 맞다. 언뜻 오천만의 밉상, 온 국민의 욕받이가 돼버린 듯한 바로 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말이다.

이영주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지난 18일부터 더불어민주당 대표실을 점거해 단식농성을 벌이다 27일 경찰에 체포됐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등 구속 노동자 석방과 근로기준법 개악 중단, 정치 수배 해제를 요구한 그 또한 2년 넘게 수배자 신세였다. 보수야당들은 남의 당사에서 벌어지는 일에 오지랖 넓게 정치 공세를 펼쳤다. “불법 세력을 내쫓지 못하는 속사정이 뭐냐”는 그들의 질문은, 질문의 형식을 빌려 정부와 여당을 민주노총과 엮는 일타쌍피의 연좌제 색깔론이었다. 그들의 선전은 ‘민주노총=악’이라는 등식을 통해 힘을 받고, 다시 민주노총 관련 기사에 주렁주렁 붙는 고약한 댓글을 통해 자연법칙의 반열에 올랐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댓글의 논지를 분석해보면 크게 두 가지다. 민주노총은 기회주의 세력이라는 것(“전 정권 땐 찍소리도 못하더니”), 그리고 귀족노조의 이익만 대변한다는 것(“재벌노조 역겹다”). 한상균 위원장과 이영주 사무총장이 박근혜 정권 때 민중대회를 개최해 ‘정권 퇴진’을 외치다 여태 모진 수난을 겪고 있고, 죽음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해고 노동자들을 위해 목숨 걸고 싸워왔다는 사실은 기각된다. 사실의 공백 속에서 민주노총은 적폐세력으로 낙인찍히는데, 진짜 적폐세력들은 이를 정부와 여당까지 싸잡아 공격하는 빌미로 써먹고 있다. 문재인 정부 지지자로 추정되는, 댓글을 단 이들에게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민주노총이 비판받을 일은 한둘이 아니다. 급변하는 노동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해 미조직 사업장과 노동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들이 외부에 방치된 만큼, 또 유연하고 실용적인 전략 대신 명분에만 매달려 헛심을 쓰는 만큼, 민주노총도 스스로 약골이 됐다. 그럴수록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입김은 세졌고, 내부 민주주의는 취약해졌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합쳐도 민주노총을 적폐로 낙인찍을 근거는 못 된다. 민주노총을 비난하는 댓글의 논리 가운데 상당수는 보수세력과 자본 쪽에서 왔다. 민주노총에 대한 비난이 뜻하지 않은 역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숫제 아이러니만은 아닌 까닭이 거기에 있다.

새 정부가 흔들리면 촛불의 힘으로 어렵사리 되찾은 민주주의마저 흔들릴지 모른다는 우려에는 나름의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그 우려가 현실 정치에 대한 과도한 몰입으로 넘어가는 건 아닌지 경계해야 한다. “정의당 가서 따지지 왜 민주당 가서 난리냐”는 식의 댓글은 징후적이다. 민주주의는 현실 정치보다 훨씬 크고 깊은 그릇이다. 민주주의의 본디 뜻은 데모스(Demos)와 크라시(Cracy)의 결합, 즉 인민의 자기통치다. 민주노총이 좋든 싫든, 노동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노동하는 나의 자기통치는 대의제의 현실 정치를 까마득히 넘어선다. ‘촛불혁명’의 역사적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나의 공장을 새삼 공장이라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