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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검은 시위’의 불편함을 넘어

한겨레 김경호 기자


얼마 전 서울 도심에서 열린 ‘검은 시위’에 취재차 갔다. 드레스 코드(복장 규정)가 정해져 있었다. 너른 야외 마당이 온통 검은색으로 일렁였다. 폴란드에서 낙태금지법 폐지를 이끈 여성들의 검은 옷 시위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했다. 참가자는 20대 여성이 다수였지만, 더러 나이 지긋해 보이는 여성들과 젊은 남성들도 눈에 띄었다. 나이 든 남성은 현장에서 프레스 카드를 발급받은 기자들 말고 없었다. 많은 이들이 검은색 머플러로 얼굴을 가렸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남성의 언어로는 더는 소통할 뜻이 없다는 단호한 선언처럼 보였다. 나이 든 남성 기자들은 다만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지난 9월23일 보건복지부는 낙태 수술을 한 의료인의 자격정지 기간을 현행 1개월에서 12개월로 늘리는 내용으로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낙태 수술은 성폭력, 무허가 주사제 사용, 대리수술 등 환자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규정한 8가지 ‘비도덕적 진료행위’ 가운데 하나였다. 여성들은 그중 하나를 문제 삼으며 “국가는 내 자궁에서 손을 떼라”고 외쳤다. 국가는 그 하나와 나머지 일곱 모두 국민을 위해 국가가 나서서 처벌해야 할 ‘죄’라고 했지만, 여성들은 그 하나와 나머지 일곱은 양립할 수 없고, 그 하나를 처벌하면 오히려 자신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낙태죄는 새로울 것이 없다. 형법 제27장 269, 270조는 낙태한 여성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 낙태를 도운 의사와 조산사 등에게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었다. 2011년 복지부는 연간 낙태 수술 규모를 17만 건으로 추정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나도 낙태를 했고, 엄마도 낙태를 했고, 할머니도 낙태를 했다”고 증언했다. 정부의 느닷없는 조처가 ‘인구 절벽’에 대한 해법의 일환일 거라는 의심은 타당해 보였다. 낙태를 막아 인구를 늘리겠다는 발상은 한편 가련하면서도,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 취급하는 폭력이었다.


여성들의 분노는 행정처분 규칙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날 집회는 남성들에 대한 거침없는 성토의 장이기도 했다. 임신의 과정은 남녀가 함께 하는데 결과의 책임은 여성만이 지고, 책임의 자리에서 홀연히 이탈한 남성은 홀로 위험과 고통을 감당하는 여성에게 오히려 죄를 묻는다고 했다. 여성을 낙태로 내몰면서 낙태를 금지하는 역설 안에는 남성만의 성적 자유로 상징되는 지배질서가 숨어 있었다. 여성은 섹스에서도, 임신과 출산 그리고 낙태에서도 제 몸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행정처분의 저 일개 규칙은 양성평등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인 한국 사회의 번지수였다.


고백하자면, 2시간 넘게 이어진 집회가 내내 불편했다. 취재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면 일찌감치 자리를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불편함은 내 생물학적인 성보다는 50년 가까운 내 삶의 기억에서 오는 듯했다. 나이를 먹으며 나름 성인지성이 높아졌다고 자부해왔건만, 내 한계는 과거 시제가 아니었다. 저기 여성들 사이에 검은 옷을 입고 앉아 공감과 연대감을 표시하는 남성들의 자리에 내가 앉아 있는 모습은 상상으로도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낙태죄 폐지를 지지한다는 사실로써 해명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기득권에 훈육됐고, 실제로 누리는 위치에 있다.


그날의 불편함을 통과한 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스스로 저 자리에 쉽게 들어가 앉을 수 없음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과, 그럼에도 그 자리로 다가가려는 지향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이 ‘정치적 올바름’에만 기대어 여성들을 간단히 “동지”라고 호명하는 것보다는 나은 태도가 아닐까 싶다. 예술문화계에서 상징권력을 누려온 남성들의 예술과 교육을 빙자한 성추행이 최근 잇따라 폭로되고, 그 가운데 자칭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속이 검은 이까지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그런 확신이 좀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