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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낯선 죽음, 낯선 물음

지난 6월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지난 17일 숨진 세월호 민간잠수사 김관홍씨의 영정과 관이 화장을 위해 옮겨지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죽음은 체험을 통해 익숙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 누구도 경험 삼아 죽어볼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부분의 죽음은 사회적 경험 과정을 거쳐, 살아 있는 이들에게 익숙한 무엇이 된다. 죽음을 자주 접해서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이미 죽음에 대해 우리 사회에 규범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호상입니다”라고 상주와 인사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고인이 그 말에 동의할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죽음의 해석은 일종의 배치다. 그 메커니즘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언론 보도다. 지하철 선로에 투신한 사람의 자살 동기는 반드시 몇 가지 범주 중 하나에 배치된다. 신병 비관, 실연, 입시 실패, 생활고, 스트레스….


그러나 어떤 죽음은 여전히 낯설다. 얼마 전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으면서 죽음에 대해 내가 얼마나 경로 의존적인지 깨달았다. 작품에는 5·18 당시 숨진 두 소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희생된 이들에 소년들도 여럿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들이 죽음에 이른 사연은커녕 그 죽음의 사실조차 일상의 기억 속에 보관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5·18은 열사들의 역사 현장이었고, 열사는 의심의 여지 없이 어른이었다. 주류 기독교에서 예수가 의심의 여지 없이 백인 남성이듯이. 소년들은 열사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있는 존재였다. 서사화된 그들의 죽음은 낯설었다.


세월호 민간 잠수사 김관홍씨의 죽음도 다르지 않았다. 참사 직후였던 2년 여 전, 나는 보이지 않는 피해자들에 대해 누군가와 얘기를 나눴다. 단원고 수학여행단이 아닌 ‘일반’ 희생자들, 생존한 학생들과 교사들, 생계의 어려움에 처할 진도 사람들…. 그 중에서도 처참한 주검들을 수습한 잠수사들은 훗날 가장 끔찍한 악몽에 시달릴 터였다. 그러나 김관홍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절박한 메시지를 타전할 때까지 나는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었고, 그래서 이야기로 구성되지 못하는 고통을 보듬은 채 (지금까지는) 가장 천천히, 가장 오래 죽어간 세월호 희생자가 되었다.


투명인간은 죽고 나서야 존재가 가시화됐다. 죽기 전에 무엇을 했고, 그것에 의해 어떻게 고통받았는지도 죽음을 통해 비로소 알려졌다. 그런 면에서 그에게 죽음이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삶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죽음의 일반론이기도 하다. 사실, 모든 죽음(의 과정)은 삶의 일부이며, 각자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세월호 희생자의 상징처럼 된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넋들’에게도 다시 개별자들의 고유한 서사가 있다. 그 어떤 죽음도 사회가 규범화한 몇 가지 유형에 오롯이 배치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의 죽음에 의해 대표될 수도 없다.


김관홍씨의 낯선 죽음은 세월호의 비극뿐 아니라, 세월호의 진실 찾기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웠다. 고의적인 은폐 여부와 상관없이, 세월호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여전히 부분적이고 파편적이다. 그의 고통을 미처 보지 못했던 내게도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실에는 참사에 대한 나의 직간접적인 책임 소재도 숨어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하철역 안전문을 고치다 희생된 스무 살 노동자를 애도하는 만큼 에어컨 실외기를 고치다 추락사한 마흔세 살 노동자를 애도하지 않은 그 차이의 심연에도, 인양해야 할 세월호의 진실이 있지는 않을까.


이들의 죽음과 견줘, 어느 삼십대 검사의 죽음은 이질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죽음 또한 더없이 낯설다. 그의 죽음은 외부에 대한 권력의 야만성이 정작 내부에서부터 작동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내부에서의 억압은 곧 외부로 향해 똑같은 구조와 방식으로 증폭되고, 내부의 억압에서 생존한 자들만이 선택되어 야만적인 권력의 화신으로 배양된다. 그의 죽음을 더욱 낯설게 대해보자. 권력 내부의 음습한 민낯도 더 잘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 낯선 죽음들을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이어보자. 산 자들의 세상에서 가려지거나 잊혀진 진실이 그 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