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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필리버스터, 그 이후

황교안 국무총리가 애국가를 부르다가 4절에서 막힌다고 해도 그의 애국심을 의심할 일은 아니다. 그가 애국가 4절 완창을 애국심의 출발점으로 강조했고, 애국심을 공직가치의 핵심 기준으로 규정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의 바람잡이 노릇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의 애국심을 의심하는 건 가령 노량진 고시촌에 ‘애국가 잘 불러 공무원 되기’ 특강 같은 게 생겨서 최우수 이수자가 곧바로 애국자로 승인되는 것만큼이나 난센스 아닌가.

테러방지법이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 이슬람국가(IS)와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 논증하는 것도 부질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소식에 탁자를 내려치며 “어떤 나라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기가 막힌 현상”이라고 개탄하고는, 별안간 테러방지법과 경제 살리기의 연관성을 역설했다. 대통령은 입만 열면 모두 ‘기-승-전-애국’이다. ‘언어는 존재의 집’(마르틴 하이데거)이라고 했을 때, 대통령은 애국이라는 집의 엄한 가부장이다. 그 집은 비록 구리고 기이한 스타일이긴 해도, 난공불락의 성채다.

박근혜 정부의 애국 마케팅이 총선용이라는 의심을 사지만, 더 따지고 들어가면 이데올로기적인 통치술이다. 통치 대상에게 애국심을 증명‘하도록’ 요구(국가공무원법)하고, 그 기준에서 일탈하지 ‘못하도록’ 감시(테러방지법)하려고 드는 것이다. 그러나 ‘하도록 하기’와 ‘못하도록 하기’는 동기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통치 대상에게 미치는 압력은 딴판이다. 국가공무원법은 적어도 (하지 않을) 선택권이라도 주는데 비해, 테러방지법은 애국자 코스프레를 하느냐 마느냐로 끝나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을 일시에 비상사태로 만들어버린다.

필리버스터가 끝났다. 비상한 사태에 맞선 비상한 대응이었다. 그러고는 일사천리로 테러방지법이 처리됐다. 통과를 막을 수 없을 거라던 전망은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남은 국회 회기와 총선 같은 정치 일정 분석만으로 다 설명되지 않는다. 이 비상한 법률이 지배하는 건, 다시 말하지만 평범한 일상이다. 일상을 지켜내기 위한 비상수단(필리버스터)은 힘이 부족한 게 아니라 너무 비상한 게 문제였는지 모른다. 애국을 빙자한 테러방지법을 막으려면 먼저 우리의 일상이 강한 면역력을 갖췄어야 한다. 현실은 어땠을까.

“애국이란 무엇인가. 애국가 완창, 이런 게 아니라 말없이 헌법이 정한 국민의 4대 의무를 다하는 것 아니었던가. 군대에 가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교육을 받고, 이 시간에도 열심히 일하는 우리야말로 진정한 애국자가 아니던가.”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되자 손석희 앵커가 했던 말이다. 수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정상과 비정상, 포섭과 배제의 무의식이 숨어 있다. 군대에 안(못) 가는 여성과 장애인, 일자리가 없어서 세금도 못 내는 청년, 제도교육 바깥의 청소년/녀…. 애국 바깥의 존재들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국민의 4대 의무를 다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다. ‘헬조선’은 누군가에게 일상이 곧 비상사태임을 은유한다. 문제는 어떤 애국인가가 아니라 애국 자체일 수도 있다.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군대, 학교, 대중매체 등을 제도화된 이데올로기 장치라고 했다. 사회 구성원들은 이 장치들을 통해 지배 이데올로기를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하고, 체제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애국이 그런 혐의를 벗으려면 적어도 이 국가가 ‘헬’은 아니어야 한다.

지금 서울 을지로 옛 국가인권위원회 옥상 광고탑에서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60일 넘게 고공농성을 하고 있고, 서초동 삼성전자 본사 앞 ‘반올림’ 천막농성도 150일을 넘겼다. 대통령과 총리가 애국의 이름으로 벌이는 주술에 대해 진정성을 따지는 건 난센스다. 애국을 넘어서, 공공성과 연대의 가치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이 살아있는 일상을 재구성하는 것이야말로 이 비상사태에 맞서는 길고 끈질긴 저항의 시작이 아닐까. 

* 한국방송대신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