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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2015 재림한 ‘소요죄’가 말하는 것


제3차 민중총궐기 ‘소요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12월1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면을 쓴 채 목소리와 각자 가져온 호루라기와 탬버린, 그릇 등 다양한 도구들로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에게 ‘소요죄’를 적용한 공안당국을 규탄하는 뜻으로 3차 대회를 이같은 문화제로 진행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1919년 3·1운동이 시작되고 한 달쯤 지나 후작 이완용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세 차례에 걸쳐 ‘경고문’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실었다. 글 안에는 모두 5차례 ‘소요’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경고는 조선 민중을 향한 것이고, 소요는 그들의 만세운동을 가리킨다.

2015년 11월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체포됐다. 경찰은 ‘소요죄’ 혐의까지 얹어서 그를 검찰에 송치했고, 경찰청장 강신명은 다른 가담자 여럿도 체포해서 똑같은 혐의를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두 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그 다음에는 희극으로.” 카를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1장에 남긴 저 유명한 명제(원문을 그대로 인용한 것은 아니다)를 거의 100년의 시차가 있는 3·1운동과 민중총궐기대회에 대입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후작과 경찰청장, 소요와 소요죄, 경고와 엄포(이건 내 표현!)…. 눈에 띄는 것들 가운데 ‘변주된 반복’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간추리면 대략 이 정도다. 누군가는 일제 강점기와 지금을 어떻게 단순비교할 수 있느냐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후작 이완용도 그 말에 동의할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경찰청장 강신명의 언동과 비교해보자.

후작 이완용은 3·1운동 초기에 같은 신문에 쓴 ‘황당한 유언(流言)에 미혹치 말라’는 글에서 당시를 ‘문명사회’로, 독립을 요구하는 만세운동은 ‘미개’한 행위로 규정했다. 경찰청장 강신명은 최근 “독재 때나 도로 점거가 정당성이 있었지 지금처럼 자유민주주의와 법치가 완성된 시점에서는 평화집회에서 준법집회로 나가야 한다”며 평화집회 주최자들을 형사처벌하겠다고 밝혔다.

문명사회와 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 독립 요구와 생존권 요구, 만세 부르기와 평화집회, 미개와 불법, 그리고 언어도단과 궤변(이건 내 평가!)…. 다시 살펴봐도 100년 전과 현재는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독립을 요구하면 미개인 취급을 받는 찬란한 문명사회에서 살았고, 우리는 평화조차 언제든 불법이 될 수 있는 완성된 민주주주의/법치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와 얼마 전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일본 문서에서는 3·1운동을 계속 ‘독립 소요’나 ‘조선 소요’로 명명합니다. 피치자들의 몸부림을 ‘소요’로 비칭하는 것이 식민주의자의 시각인데, 지금도 바뀐 게 없나 봅니다.” 후작 이완용의 시각은 곧 조선총독부와 일왕의 시각이었다. 경찰청장 강신명의 발언도 ‘개인적 소신’만은 아닐 것이다. 반복되는 역사 또한 파편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적 총체로서의 역사다.

그리하여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친일 전력의 전직 대통령 아버지를 둔 현 대통령의 지극한 효행으로만 환원될 수 없다. 앞에서 실증적으로 살핀 것처럼, 어떤 세력에게 일제 강점기와 현재는 하나만 긍정하고 다른 하나를 부정할 수 없는 관계다. 현재가 이상적인 체제라고 느끼는 사람은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으로 가도 다시 이상적인 체제를 발견할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런 세력이 고질적으로 앓아온 인지 부조화에 대한 정신의학적 자가처방이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왜 똑같이 반복되는 역사를 두고 하나는 비극, 다른 하나는 희극이라고 했을까. 그런 극단적인 장르 이동이 실제로 가능하기는 한가. 물론 그것은 수사학이다. 처음엔 해석의 여지없는 참극이었지만, 참극의 반복을 막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를 걷어차버린 역사 속 지배권력의 맹목성에는 분명 희극적인 요소가 있기는 하다. 마르크스가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웃프지 아니한가.” 중요한 건 역사를 반복해 농단한 이들도 끝내 비극을 맞더라는 것이다. 

* 방송대학신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