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발표글

‘크림빵 아빠’는 어떻게 예외가 되었나

‘크림빵 아빠’라는 표현을 처음 들은 건 그 단어가 이미 강력한 세태어가 된 뒤였다. 경찰이 유력한 용의자를 쫓고 있다는 뉴스 속보에서였는데, 제목과 본문이 모두 ‘크림빵 아빠’로 시작되는 데다 동료들마저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걸로 미뤄 내 ‘시사 지체’가 심각하다는 걸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새해 들어 담배 대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끊은 탓이려니 하다가, 뜬금없이 대학 시절 학교 앞에 있던 유서 깊은 빵집이 떠올랐다.

1970년대 그 대학에 다니던, 그러니까 나보다 10년쯤 연상인 유명 여배우도 즐겨 찾았다는 그곳의 대표 메뉴가 크림식빵이었다. ‘죽을 때까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는 말은 진부할뿐더러 진실도 아니지만, 처음 맛봤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는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최루탄에 찌든 심신이 혀끝에서부터 스르르 ‘정화’되는 기분! ‘크림빵 아빠’ 사건에서 그 빵집이 떠오른 건 글자 몇 개의 연상작용 때문만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 사건은 전형적인 뺑소니 사망 사고다. 망자와 유족에게는 우주 하나가 소멸하는 참극이지만, 통계를 보면 2013년 한 해에만 9604건의 뺑소니 사고로 219명이 숨졌다. 200개가 넘는 우주들이 ‘크림빵 아빠’처럼 소멸한 셈이다. 지금도 거리 곳곳에는 뺑소니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들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고, 이번 사건을 해결하는데 눈부신 활약을 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도 딱한 사연들은 숱하게 올라와 있다.

이 숫자와 풍경들은 ‘크림빵 아빠’ 사건에 쏟아진 온 국민의 관심이 지독히 예외적이었음을 일러준다. 경찰은 수사본부까지 꾸려 범인 검거에 나섰고, ‘누리꾼 수사대’는 경찰보다 기민했으며, 언론 보도는 실시간에 가까웠다. 마침내 범인이 검거되었다. 어느 대학은 만삭의 희생자 부인을 특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정의감 넘치는 무용담과 크림빵 같은 미담은 뺑소니 희생자들끼리도 결코 평등하지 못한 잔인한 현실 위에서 기술된다.

우리가 이 사건에 반응한 것은 희생자의 무구함 때문이 아니다. (죽어 마땅한 희생자는 없다.) 예외적인 건 사건 자체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집단 감각이 사건을 예외적으로 ‘선택’하고 사연으로 ‘서사화’한 것이다. 사범대 출신 트럭기사, 고단한 퇴근길, 만삭 아내를 위한 크림빵, 비명횡사….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을 결정적으로 예외화한 건 뱃속 아이다. 희생자가 ‘크림빵 남편’이 아니라 ‘크림빵 아빠’로 호명된 건 우연이 아니다.

여기에서 ‘가족주의’를 읽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족주의는 여러 극적 요소들에 서사적 구성력으로 작용하면서 ‘정화’의 미장센을 연출한다. 가령 다른 요소들은 모두 같고, 희생자가 가려던 곳이 혼외관계의 여성과 아이가 있는 곳이었다면 어땠을까. 사건은 그냥 ‘예외’가 아닌 ‘예외의 예외’가 되어 심각한 역반응을 일으키고, 크림빵은 갸륵함과 애잔함이 아닌 혐오의 상징이 되어 판매량마저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을지도 모른다.

가족은 신성의 공간인가. 현실에서 목도하는 많은 경우, 가족은 오히려 정반대의 공간이다. 2차, 3차 사회의 모순과 갈등이 아무런 여과 없이 유입돼 백병전을 치르는 전쟁터다. 그런 맥락에서 ‘크림빵 아빠’ 사건은 다큐멘터리보다는 판타지에 가깝다. 우리가 ‘가족’을 떠올릴 때마다 겪는 분열적인 인식과 불안은 ‘가족 판타지’라는 상품의 소비를 부추긴다. 우리는 희생자 가족과 연대한 게 아니라 그들의 사연을 크림빵처럼 소비한 것이다.

판타지를 소비한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를 은폐할 뿐이다. 내가 30년 전 학교 앞 빵집에서 달콤한 크림식빵을 입에 넣으며 심신이 정화되는 효능감을 느낄 때에도 통유리창 너머로 최루탄 연기 자욱한 1980년대의 시간은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 방송대학보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