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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저 굴뚝 위의 시간은 어떻게 흐를까…

2014년을 나는 꽤 요란하게 시작했다. 해맞이 행사장에 가려고 새벽같이 나섰는데도 버스 안은 손잡이 하나 차지할 수 없을 만큼 붐볐다. 버스에서 내려 몇 걸음 내딛지 않았을 때, 버스 안이 천국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인파에 쓸리면서 어찌어찌 산마루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렀지만, 끝내 해가 뜨는 쪽으로 몸을 돌리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은 가는 길만큼이나 고역이었다. 해가 이미 중천에 걸릴 무렵 집에 돌아와 온종일 누워 지내야 했다.

이 글은 해가 2015년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쓴다. 글이 인쇄되어 나올 때쯤, 여러분이 2015년 1월1일을 어떻게 났을지 나는 모른다. 부디 큰 고초를 겪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적어도 ‘공식’ 해맞이 행사에 휩쓸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전날에도 제야의 종 행사장 근처에는 얼씬하지 않을 것이다. 그 시간에 뭘 할지는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 정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이 글은 2015년을 맞기 위해 고요히 시간의 이랑을 쌓는 거라고 해두자.

우리는 왜 그토록 해넘이와 해맞이에 열과 성을 쏟는지부터 생각해보게 된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서? 미안하지만, 다가오는 모든 시간은 새 시간이다. 끝도 시작도 없다. 배 기둥에 칼집을 낸다고 바다 위에 좌표를 새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농경사회라면 시간은 와서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기에 시간의 주기가 그만큼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 농경사회의 풍속을 따르고 있는가, 도심 한복판이나 산꼭대기에서 필사적으로?

현대인의 시간은 순환이 아니라 분절이다. 분절 단위는 자연의 시간과 무관하다. 일상은 해 뜨는 시간과 해 지는 시간에 상관없이 구성된다. 여름엔 훤할 때 출근하고 겨울엔 깜깜할 때 출근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서울에서 그리니치 표준시뿐 아니라 미국 대서양시와 태평양시에 연동해 산다. 시간의 주체는 전 지구적인 지배체제다. 연말연시의 요란한 행사들도 지배체제의 결산 주기 성격을 띤다. 우린 다만 시간의 매개에 의해 동원된다.

얼마 전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과 과천 코오롱 본사 앞을 다녀왔다. 쌍용차 공장 70m 굴뚝 꼭대기에서는 해고노동자 두 사람이 농성을 하고 있다. 그 까마득한 높이에서 손을 흔드는 두 사람이 소실점으로 어른거렸다. 그 위의 시간은 어떻게 흐를까. 코오롱 본사 앞 천막에서는 해고노동자들이 10년을 투쟁했고, 그날이 투쟁 마지막 날이었다. 그들의 시간은 어떻게 흘렀을까. 이제 끝인가 새로운 시작인가. 어느 쪽의 시간도 가늠되지 않았다.

2014년은 유난히 사건 사고가 많았다. 누구라도 세월호 참사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세월호 사건은 배의 침몰 이후가 진짜 참사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사건 초기에 “잊지 않겠다”고 되뇌었지만, 다짐은 시간에 풍화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 유가족들은 그럴 수 없다. 사고 이후 시간이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체제의 시간 밖에서 존재한다. 체제가 먼저 배제했으나, 이제 체제에 의해 동원되지 않는다.

우리가 시간의 주체라면 2014년에 벌어진 그 많은 참극들을 재고 떨이하듯 과거로 처분하고 2015년을 맞지는 못할 것이다. 적어도 지배체제의 결산 주기를 맹종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고 보니 글을 맺기 전에 새해를 어떻게 맞을지 결정해야겠다. 쌍용차 공장 앞을 찾았을 때, 굴뚝 위의 벗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려오면 고기를 구워먹자. 지금부터 숙성시켜 놓겠다.” 곧 답이 왔다. “그러지 말고 송아지를 키우는 게 어떻겠는가.” 그가 쉬이 내려올 수 없겠다 싶어 눈물이 났다. 1월1일 아침에 다시 찾아가 물어야겠다. “그 위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가?”

* <한국방송대학보>에 실렸습니다.
* 1월1일 신소2와 함께 평택에 다녀왔습니다. 굴뚝 위의 해고노동자들은 “바람이 너무 세서 굴뚝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고 ‘절박한’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그 위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가?”라고 물었더니 “이른새벽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을 빼면, 여기 시간은 아주 빠르게 간다”고 했습니다. 저 높은 굴뚝 위가 이 아래와 튼튼히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였고, 그보다 좋은 새해 덕담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