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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프랑스 대선을 보는 정신승리법

‘올해는 선거의 해’라는 말은 한국 언론에게는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한 해에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는 것도 20년만의 일이니 지나친 호들갑이라고만은 할 수 없으나, 한국 언론은 딱 거기까지다. 올 한 해 국제 정세의 향방을 가를 외국의 굵직한 정치 이벤트가 한둘이 아니다. 최근만 해도 중국의 차기 권력이 시진핑으로 정해졌고,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한 박자 쉬고 다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 사건이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신문·방송을 통해 알기는 쉽지 않다. 미국 대선 공화당 예비선거에는 오히려 과한 관심을 보이지만, 결코 경마중계식 보도를 넘어서는 법이 없다.

지난 22일, 프랑스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5월 6일 결선 투표가 치러진다. 한국 주요 신문 가운데 1차 투표 결과를 1면에 실은 신문은 없었다. 1차 투표이니 그럴 수도 있다. 경험에 비춰볼 때, 다음 결선 투표 결과는 1면 두 번째 기사 정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면에서 접한 이번 1차 투표 결과 보도는 오랜 경험조차 무색케 했다. 조선·중앙·동아일보의 편집은 우연의 일치치고는 놀라웠다. 이들 신문은 1위 득표자이자 최종 당선이 유력한 올랑드 사회당 후보 대신 3위를 차지한 르펜 국민전선 후보를 머리기사로 올렸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올랑드가 머리기사였다.

르펜을 머리기사로 올린 세 개 신문이 ‘조·중·동’이라고 한 묶음으로 불리는 까닭을 이보다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 것이다. 한국의 이번 총선에 견주면, 세 개 신문이 과반 의석으로 제1당에 오른 새누리당 대신 제3당을 차지한 통합진보당을 머리기사로 올리는 셈이다. 이처럼 상식을 전복하는 편집이 싱크로나이즈 스위밍 하듯 이뤄진 것은, 이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프랑스 대선을 철저히 이념이라는 자신의 바늘구멍으로 들여다보고, 또 재현한다는 뜻이다. 프랑스에서 18년 만에 좌파가 집권한다면, 그것은 파편적인 사건이 아니라 유럽을 넘어서 세계사적 흐름을 반영하는 사태로 읽힐 수밖에 없다.

프랑스 대선 결과는 복잡한 수식을 거쳐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12월 대선 전망에 반영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이들 신문은 정치적 이해타산에 매달린다. 이 난감한 사태 앞에서 정신승리법이라는 신공을 발휘하고 말았다. 자신을 위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그렇게 봐주기를 기대해서다. 공교롭게도 르펜은 아버지를 이어 대선에 뛰어든 극우파 여성이고, 그녀가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그녀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프랑스 대선을 그저 흥미로운 게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12월 대선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남았다. 이들 신문의 신공을 볼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많을 거라고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 좀 오래전에 <한국방송대학보>에 실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