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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글

신파 넘어 판타지로 ‘진화’한 저널리즘



얼마 전 끝난 철도 파업이 애초 왜 시작됐는지 아는가? 몰라도 하등 이상할 건 없다. 언론들이 제대로 보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철도 파업은 60년 동안 유지해오던 단체협약을 철도공사가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시작됐다.) 대신 언론들은 경제 피해에 관해 검증되지 않은 수치를 연일 대서특필했다. 그리고 대통령 말 한마디에 아무 의심 없이 ‘불법’이라는 딱지를 갖다 붙였다. 물론 “노조의 파업은 합법이며, 정작 불법을 저지른 건 대체 근로를 투입한 사측”이라는 법률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은 아예 배제했다.

한국 언론의 파업 보도는 유구한 일관성을 갖고 있다. 정책이나 경영 문제 등으로 파업하면 근로조건과 무관한 ‘불법 정치파업’이라고 단죄하고, 임금 등 근로조건을 걸고 파업하면 ‘밥그릇 싸움’이라고 비난한다. ‘어떤 파업도 무조건 안 된다’가 논리적 귀결인 셈이다. 그렇다고 모든 기자들이 선배의 따라쟁이는 아니다. 파업 보도도 나름 ‘진화’한다. 이번에는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중앙일보> 12월4일자 1면 머리기사)는 기사가 파업 보도의 역사를 새로 썼다. 내용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한 고등학생이 서울대 면접시험을 보러 가려고 인천 소사역에서 열차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날 아침 서울 구로역에서 운행 장애가 일어나 한동안 열차가 오지 않았다. 열차를 포기한 채 버스를 갈아타고 가느라 20분 지각했고, 면접은 불허됐다. 면접만 봤으면 무조건 합격했을 거라고 교장은 말하고, 맞벌이를 하느라 자가용으로 아들을 데려다 주지 못한 부모는 가난을 원망했다. 그는 서울대를 가야 지자체에서 주는 장학금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다. 그런데 구로역 사고는 노조 파업 때문에 대체 투입된 군 기관사의 실수로 일어났다.

이 보도를 계기로 한국의 저널리즘은 졸지에 신파가 됐다. 가난한 집의 수재와 서울대라는 로망의 요소가 파업이라는 악의 요소와 선명하게 대립하며 눈물샘과 분노를 동시에 자극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플롯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파업과 운행 장애 사이에 개연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운행 장애는 평소에도 수시로 일어난다. 이 상시적 개연성을 파업과 서울대 불합격의 인과관계로 전치하는 것을 저널리즘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 식이라면 애초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철도공사에는 왜 책임을 묻지 않는가?

문제의 기사는 신파를 넘어서 판타지 소설일 수도 있다. <중앙일보>를 보면 학생이 소사역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7시였다. 그런데 구로역 사고 기사들을 찾아보면 열차가 멈춰선 건 그보다 1시간 가까이 늦은 시각이다.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도 있는 걸까? 그리고 그것 역시 파업 탓인가?

※ 등록일 : 이 글은 <한국방송대학보> 제1566호(2009-12-14)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