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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용호 국세청장 후보자의 낯익은 변명

책 보관하려고 부동산 투기?…양주만 마시면 독해서 폭탄주! 
 
공자는 “남자라면 모름지기 다섯 수레의 책은 읽어야 한다”고 했다. 여자는 몇 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지 말하지 않은 것은 그가 여성을 지식인 사회의 구성원에서 배제했다는 뜻이다. 그런 공자가 아직 살아서 백용호 국세청장 후보자의 인사 청문회 답변을 들었다면 이런 어록을 남길 법하다. 자왈, “용호야, 그대는 싸나이 중의 싸나이로다.” 백 후보자는 그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한 국회의원의 추궁에 “많은 책을 보관할 장소가 없어서”라고 답했다. 그는 아파트 두 채와 오피스텔 두 채, 대지 한 곳, 합이 다섯인 부동산 부자다. 그는 겨우 다섯 수레가 아니라 너끈히 집 너댓 채다. 대학교수 출신이라면 모름지기 그 정도는 돼야 하는 것이다.

▲ 백용호 국세청장 후보자ⓒ 오마이뉴스

권력의 주변에는 늘 지식인들이 포진하고 있다. 지식인의 순결성은 저자와 거리두기가 아니라 저자에서 아는 것을 실천하는 데 있기에, 권력과의 물리적 거리로 지식인의 값어치를 따질 수는 없다. 공자도 자신을 써줄 군왕을 찾아 일생을 ‘주유천하’했다. 중요한 건 그 권력이 어떤 권력이고, 자신의 지식을 무엇을 위해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다. 공자는 나이 오십(지천명)이 넘어 어렵게 벼슬을 얻었지만 군왕이 여색에 빠지자 미련없이 벼슬을 버렸다. 그러나 공자로부터 “싸나이 중의 싸나이”로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집 너댓 채의 책을 가진 백 후보자가 어떤 지식인에 속할까를 묻는 건 멋쩍은 노릇이다. 

이명박 정부에는 어느 정부 때보다 지식인들이 많이 몰려 있는 듯하다. 사람이 많으면 별의별 품성이 다 있기에, 권력 주변에 모인 지식인들 가운데 일부의 추악성이 드러나는 것도 크게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유독 심하다. 집권 초기엔 어느 여성 장관 후보자가 ‘땅을 너무 사랑한 복부인’의 신파를 연출하더니, 이젠 ‘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집을 사랑하게 된’ 연예담이 부동산 투기를 잡아야 하는 국세청장 후보자의 입에서 나왔다. 책과 집의 전복적인 스토리 라인이 괴이하다. 그가 보유한 그 많은 책들이 온통 부동산 투자 지침서가 아니고서야, 개연성을 지나치게 남발한 시나리오다.

이명박 정부 들어 권력의 곁불을 쬐는 지식인들의 정체성은 ‘지식’에 있지 않다. ‘강부자’ ‘고소영’ ‘에스라인’ 따위의 표현은 지금 한국사회가 특정한 계급과 연고가 결합한 독점사회임을 꼬집는 비웃음이다. 이명박 정부 주변 지식인들의 정체성도 정확히 이 범주 안에서 교집합을 이룬다. 지식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비지성적이며 지식배반적인 정체성이다. 그래서 과거 정권에서 추문을 일으킨 지식인들이 지식인 사회를 욕먹였다면 이들은 결코 지식인 사회를 욕먹이지 않는 역설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다만 특정한 계급과 연고를 가진 이들이 싸잡아 욕을 먹을 뿐이다. ‘강부자’ ‘고소영’ ‘에스라인’ 따위의….

백용호 후보자의 청문회 답변은 오래 잊고 지냈던 10년 전 국회 청문회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1999년 6월 진형구 당시 대검 공안부장은 점심 때 기자들과 폭탄주를 마시고 “공기업이 파업하면 검찰이 이렇게 대처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검찰이 조폐공사의 파업을 유도했다”는 내용의 발언을 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그 뒤 국회청문회에 불려가서 “왜 폭탄주를 마시는가”라는 한 국회의원의 질문을 받고, 역사에 길이 남을 명대사를 날렸다. “양주만 마시면 너무 독해서….” 10년이라는 수에서 상수학적 주기설이나 진-백 두 사람 사이 빙의의 낌새가 느껴진다. 폭탄주 많이 마시고 책 많이 읽어봤자 백날 도루묵이다.

미디어스 안영춘 기자  jona01@media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