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는 연인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몇 가지 통과의례 가운데 하나가 ‘말 바꾸기’다. “영원히 너만 사랑할 거야”라는 숱한 맹세는 그 통과의례를 거치는 순간 빈말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별을 눈앞에 두고 상대방 말의 일관성 없음을 문제 삼는 짝은 드물 것이다. 비록 악감정에 복받치더라도, 상대가 악질이 아닌 한, 지난 밀어의 진정성만큼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작업성’ 코멘트를 포함한) 사랑할 때의 언어와 (쿨함을 가장한) 이별할 때의 언어가 서로 어긋날지언정, 그들에게 두 언어는 모순 관계에 놓이지 않는다.
▲ 민주당 최문순 의원
본디 윤리란 다분히 가역적이다. 윤리의 가역성을 인정하는 것은 관용의 태도가 아니라 윤리 자신의 생존기반을 구축하는 윤리 본위적 태도다. 가역성을 인정하지 않는 윤리는 도그마이며, 정치적 이데올로기다. 모든 말 바꾸기를 비윤리로 낙인찍으면 개별적 말 바꾸기의 윤리적 차이를 ‘식별’할 수 없게 되고, 악질적인 말 바꾸기마저 윤리적 판단 범주에서 벗어나게 하는 역효과를 낳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윤리라는 이름의 비윤리적 도단이며, 프로파간다의 질나쁜 수단이다.
사회적 차원에서 보자면 말 바꾸기는 위생학적 ‘관리’가 필요한 사안이다. 완전한 박멸에의 강박이 오히려 사회의 내성을 약화시키는 비위생학적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거꾸로 창궐을 방치했다가는 위생학적으로 치명적인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양적 관리와 질적 관리가 동시에 필요하다. 지금 한국사회의 말 바꾸기는 양적 창궐의 상태다. 더욱 고약한 건 말의 우월적 지위를 행사하는 정치와 언론 영역에서 기회주의적인 말 바꾸기가 유별나다는 점이다. 질적 심각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말 바꾸기에 대한 윤리적 시시비비는 이전투구의 아수라장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나경원·정병국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최근 말 바꾸기에 대한 시비에 나섰다. ‘주가지수 연내 3000 돌파’의 대통령 대국민 약속이 순식간에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데도 국민들이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뻔뻔한 대국민 질책으로 뒤집어지는데도 아무 말이 없던 그들이 대경실색한 표정으로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국회의원이 되더니 말 바꾸기를 했다”며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내용인즉슨 최 의원이 MBC 사장 취임 직후 인터뷰에서 신문·방송 겸영 금지를 풀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는 것이고, 민영 미디어렙을 해달라고 몇차례 공문까지 보냈다는 것이다. 방송사 사장 시절이야 모르겠지만, 국회의원으로서 최문순은 신문·방송 겸영과 민영 미디어렙 도입 모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
최문순과 나경원·정병국의 말 바꾸기는 얼핏 닮은꼴 대칭처럼 보이지만, 실은 지독한 비대칭이다. 양쪽은 수평이동이 아닌 질적 전화를 한 것이다. 존 트래볼타와 니컬러스 케이지의 ‘페이스 오프’를 떠올려 보라. 최 의원은 MBC 사장 시절 인터뷰 기사 내용을 두고 “지상파와 케이블, 위성 같은 동종매체간 (진입)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매체 겸영’을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동종매체간 겸영을, 이종매체간 겸영을 뜻하는 ‘신문·방송 겸영’으로 잘못 표현했다는 뜻이다. 방송사 사장이 굳이 사양산업인 신문업 진출을 노렸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반면 나경원·정병국 의원에겐 말실수의 개연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정작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실수냐 고의냐가 아니라 그들의 말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느냐, 그리고 말을 바꾸게 한 지렛대는 무엇이었느냐다. 최 의원이 말을 바꾼 것이 설령 실수 때문이 아니었다 해도 그는 지금 (말을 바꿔) 지상파 방송의 공공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 나경원·정병국 의원은 방송의 산업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말을 바꿨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지상파 공영방송을 친정권적이고 친자본적인 조중동 방송, 재벌 방송으로 바꾸려는 속내로 법안 통과를 강행하려는 요설일 뿐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말 바꾸기 논란은 관찰자가 차이를 식별하지 못하도록 진흙탕 속에 밀어넣고 뒤섞어 버리려는 얕은 꼼수다. 자신의 비루함으로 상대마저 비루하게 만들려는 마이너스 섬 전략이며, 이를 통해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증식의 최적조건을 조성하려는 바이러스적 생존 방식이다. 이런 속악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는 ‘모든 말 바꾸기는 비윤리적’이라는 사회적 신화체계 위에서 작동하는데, 그 무한동력장치를 완성하려는 거대한 기획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최문순 의원의 말에서도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 될 대목이 있다. 그는 MBC 사장 시절 민영 미디어렙 도입을 요구한 것에 대해 “방송사의 사장으로서 자사의 이익을 높이기 위한 행위였다”고 해명했다. 그런 이유라면 지난 총파업 승리의 기관차였던 MBC 노동자들 역시 ‘자사의 이익을 높이기 위해’ 민영 미디어렙을 환영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막연한 기우만은 아니다.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 MBC는 지상파3사 가운데 이 결정을 가장 무비판적으로 보도했다.
▲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
그래서 최문순 의원과 MBC 구성원들에 대한 윤리적 평가는 유보되어야 할 뿐 아직 확정되었다고 볼 수 없다. 평가의 기준은 말의 일관성이 아니라 (방송 공공성에 대한) 태도의 일관성이 될 것이다. 사족 하나. 방송의 공공성은 연인의 밀어보다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이라는 걸 잊지 마시길….